본가의 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아직도 그곳에 살고 계신다. 개축과 증축 끝에 집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지도 벌써 30년은 넘었다. 이제 그 동네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탓에 입주까지 아직 몇 년은 더 남았다. 그래도 이제 곧 없어질 집, 달라질 동네라고 생각하니 한 번씩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내(가 쓰던) 방에는 20년이 넘은 롯데 파이오니아 콤포넌트 오디오가 있다. 턴테이블, 앰프, 이퀄라이저, 더블데크 카세트에 대형 스피커까지 갖춘 그 당시로는 꽤 비싼 물건이었다. 오디오에 전원을 안 넣은지는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아마도 동작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이 내용을 올리니 옛날 기기기들이 의외로 내구성이 좋아서 안 고장났을 거라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있었다. 다음에 본가에 가면 한 번 켜봐야겠다.)
오디오장 안에는 이곡 저곡을 모아 만든 테이프들과 LP판들이 있다. 그때만 해도 레코드 가게에 공테이프 값에 몇 천 원을 더 내고 곡목을 적어 주면 녹음을 해주던 시절이었다. LP판들은 없는 용돈에 큰 맘 먹고 사 모은 것들이었다. 변진섭, N.EX.T, 에어 서플라이 등등…
사실 딱히 추억 같은 걸 아련하게 기억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별 미련은 없다. 음악이나 음향기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다. 그러니 아마 턴테이블을 포함한 오디오는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LP판들과 테이프는 어쩔까. 다시 들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없애기엔 아깝다. 마치 여전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예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책들과 방구석 어딘가에 있을 오래전 편지들처럼.
아직은 몇 년은 더 남았지만 언젠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에 한 페친이 나중에 봐서 턴테이블이 고장났다면 이런 물건들 어떠냐며 올려준 게 있다. 나중에라도 찾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정리해서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