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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떠났다

점심 먹고 산책을 하면서 이어폰을 챙겼다. ‘Beat’ 앱을 켰다. 예상대로 ‘마왕 신해철’ 채널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를 눌렀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너”가 나왔다. 상수역 인근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으며 그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그러니까 이어폰을 챙긴 게 실수였다. 눈물이 나오다 말다 했다. 걷다 보니 가끔 들린 적이 있는 상수동까페가 나왔다. 어쩐지 허세롭게 ‘예가체프 진하게’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아마 내 눈이 좀 빨개졌을 거다. 커피 나왔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주인장이 한 서너 번은 나를 불렀나 보다. 멋쩍게 죄송합니다, 말하고 나왔다.

진한 예가체프는 정말 진했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해 보면 나는 신해철과 그리 가깝지 않았다. 그를 형이라 부를 만큼 친근하지도, 마왕이라 부를 만큼 존경(?)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는 고스트 스테이션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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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신해철은 딱 무한궤도부터 N.EX.T 4집까지였다.

뭔가 대학가요제는 본방사수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대학가요제의 1988년 무대의 마지막이 무한궤도였다. 첫 소절이 나왔을 때 정말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소파에서 튕겨나듯 일어났다. 저거 대상이네. 그랬다.

나는 그의 저음이 좋았다. 그래서 솔로 2집이 내게는 최고의 음반이었다.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를 읊조리던 “재즈 카페”, 희한하게 아직도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외울 수 있는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던 “나에게 쓰는 편지”,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칼 아마 피할 순 없겠지.’라 말하던 “50년 후의 내 모습”의 그 저음이 좋았다. 그래서 흉내를 내보려고 연습도 많이 했었다. 안 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N.EX.T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1집까지는 괜찮았는데 2집과 3집은 그나마 야들야들한 타이틀곡인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정도만 귀에 들어왔다. 나머지는 나쁘진 않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으면 사지 않았을 4집(Lazenca – A Space Rock Opera)을 마지막으로 나는 신해철과 관련된 음반을 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갔다는 소식이 이렇게 힘들다. 가고 나니 그가 데뷔 후 몇 장의 음반으로도 나의 한 부분을 그렇게나 크게 차지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가 노래했던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성찰이 내 젊은 날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았음을.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감사한다.

그가 떠나 도착했을 그곳에서 평온하기를. 그리고 나보다 더 많이 그를 마음에 품고 살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있을 벗들에게 위로를.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