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적으로 금요일은 타임캡슐의 날입니다. 2003년 앞뒤로 쓴 글들이 슬슬 다 되어가는군요. 그 이후에는 좀 더 예전 글들이 올라올 듯 합니다. (타임캡슐이란, 클릭)
[타임캡슐] 50년 후의 내 모습 『황혼유성군』
얼마전에 정말 우연히 신해철 2집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신해철 콘서트에도 갔었기 때문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었지요. 1991년에 발매되었고 ‘째즈 카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등 실려 있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역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에도 그랬고, 이번에 들으면서도 특히 ’50년 후의 내 모습’이라는 곡이 참 와닿더군요. 첨 이 곡을 들었을 때 고등학생이었는데도 그런 걸 보면, 좀 조숙했나 싶기도 하구요. 특히 신해철의 묵직한 저음과 영어 랩(?) 부분의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일들 50년후의 내 모습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칼 아마 피할 순 없겠지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노후연금 사회보장 아마 편할 수도 있겠지만I SEE AN OLD MAN, SITTING ON THE BENCH.
MAYBE HE’S CRYING CAUSE HE’S DYING.
HE’S GOT A CIGARETTE, BURNED LIKE REST OF HIS LIFE.
I TRY TO REMEMBER WHO HE IS.
HE IS ME! I SEE MY FUTURE NOW.
HE’S GOT NO FAMILY NOT EVEN WIFE AND A CHILD.
I’M SO CONFUSED, I WISH IT’S ONLY DREAM.
I HEAR THE NATURE, I FEAR MY FUTURE.벤치에 앉아 할일없이 시간을 보내긴 정말 싫어
하루하루 지나가도 오히려 길어지는 시간들(50년 후의 내 모습 / 신해철 작사,작곡)
1991년 2집 재킷의 신해철(왼쪽, 예스24)과
2003년 이라크 파병반대 1인시위의 신해철(오른쪽, 연합뉴스). 세월의 흐름이란. ㅜㅜ
자신의 남은 인생처럼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쓸쓸히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미래일지도 모르고 오히려 길어지는 시간들을 벤치에 앉아 할일없이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이든 이들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모두들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니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평균 76세로, 71년에 63세였던 것에 비하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네요. 고령 인구의 일자리라든가 사회 복지의 대책이 그다지 없어 보이는 사회이고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현실적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하는 것은 각자의 열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흔을 넘기며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불타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열정을 가슴에 품고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황혼유성군’이라 부른다”는 대사로 시작하는 작품, [황혼유성군]을 보면 그런 KTF적인 생각(^^;;)을 하게 되지요.
[시마과장]으로 유명한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인 [황혼유성군]은, 중년을 넘어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해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합니다. 70대 할머니도 왕진 온 의사를 보며 두근거림을 느끼고 왕진 오기 전에 화장대에 앉아 자신을 단장합니다. 정년퇴직 후 여행지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반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겠노라 다짐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단지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만을 그려나갔다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작가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더해가면서 극복해갑니다. 뒷 권으로 가면 산 속에서 사고를 당한 후 과거로 돌아가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랑에 빠지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라던가, 정신력으로 타인에게 환상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같은 판타지풍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하지요.
물론 에피소드들 중에는, 자기 애인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시험하기 위해 유혹하게 한다거나, 중년 여성이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거나, 중년 남성이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자신을 돈버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는 가정을 과감하게 버린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얼핏 불륜이나 원조교제를 미화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인생은 언제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50년 후의 네 모습이 인생의 황혼기가 될지, 제 2의 청춘이 될지는 너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 그런 충고를 말이죠.
by 뗏목지기 (200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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