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뉴스에 실은 인터뷰를 블로그에 백업. 슬로우뉴스에는 같은 자리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두 개로 나누어 올렸었는데, 블로그에는 그냥 하나의 포스트에 연달아 넣었다. 그래서 아주 길다. ;;
지난 2013년 8월, 웹툰 [미생]으로 국민 만화가 반열에 오른 윤태호 작가와 [씨네21] 스타 기자였던 김봉석 평론가가 뭉쳐 만든 만화 전문 매체 [에이코믹스]. 슬로우뉴스는 에이코믹스 창간 직전 김봉석 편집장을 인터뷰하고 “만화 없는 만화 웹진”의 앞날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2013년 12월 3일, 연말을 맞아 창간 후 그간의 성과와 아쉬운 점, 내년 전망과 계획을 듣기 위해 에이코믹스 사무실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날, 마침 윤태호 작가는 [미생] 시즌2 준비를 위해 요르단에서 막 입국한 직후였습니다.
- 인터뷰어: 뗏목지기, 민노씨
- 인터뷰이: 김봉석, 윤태호
인터뷰는 2시간에 걸쳐서 진행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질문에 관한 답변 외에도 현장에서 생겨난 즉흥적인 대화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진행한 인터뷰지만, 1) [에이코믹스] 전반에 관한 김봉석 편집장의 고민과 구상이 담긴 인터뷰와 2) 윤태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힌트가 될만한 대담 부분을 중심으로 각각 재구성해서 올립니다.
말만 많고 아무도 안 해서 내가 한다: 에이코믹스 김봉석
– 올해 8월 8일 창간 이후 에이코믹스는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김봉석(이하 ‘김’): 어느 정도 예상했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웹진’이라는, 용어는 있지만, 실체는 불분명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행하고 있다. 일단 괜찮은 것 같다. 그동안에 이런 만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등을 다루는 기사가 너무 없었다. 물론 부족한 점은 많지만 괜찮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지난 인터뷰에서 약속한 윤태호 작가의 ‘스페셜 인터뷰’연재가 진행 안 됐다. 기대가 많았는데, 어떻게 된 건가?
윤태호(이하 ‘윤’): 원대한 꿈이다. 일단 좀 신변을 정리하고. 잡다한 일이 너무 많다. 신년 컨셉으로 준비해보겠다. (웃음)
김: 기대 많이 하라고 그러는 거다. (웃음)
– 소제목으로 ‘윤태호 신년부터 인터뷰 진행 약속’ 이렇게 써도 되나. (웃음)
윤: 그런 식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기도 한다. 기사가 먼저 나오고, 다음에 기획에 들어가고 진행하고. (웃음)
에이코믹스 대표선수 ‘데일리 베스트 10’
– 창간 이후 지금까지, 어떤 기사 혹은 기획이 가장 잘 굴러갔다고 자평하나? 또 어떤 부문이 기대와는 달리 잘 진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지 알고 싶다.
김: 여러 가지를 했지만 모두 안정된 형태로 진행하지는 못했다. 계획은 컸지만, 현재 시스템과 인력으로는 쉽지 않았다. 일단은 ‘데일리 베스트 웹툰’에 집중하면서 코믹 뉴스, 인터뷰 기사 등을 채우고 있다. 조금 더 가봐야 할 것 같다. 내부적으로 좌충우돌한 것도 있고, 비용의 한계도 있다. 예상과는 다른 차이도 생겼다. 보통 월간지들도 6개월~1년을 완성돼 가는 기간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아직 4개월이니 좀 더 실험하고 안정해갈 필요가 있다.
– 현재 에이코믹스의 킬러 콘텐츠는 뭐라고 판단하나? 지난 인터뷰에서는 데일리 베스트 웹툰, 스페셜 인터뷰 등을 언급했었다.
김: 역시 ‘데일리 베스트 웹툰’이다. 그다음에 역시 반응이 좋은 것들은 인터뷰 기사(The Look)다. 사실 그동안 이런저런 매체들에서 조금씩 만화가 인터뷰들을 하긴 했지만, 지속적인 것이 아니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만화에 관한 관심은 확실히 높아졌다.
다음 ‘스토리볼’ ‘만화속세상’에 기사 공급
– 에이코믹스 컨텐츠를 다음 스토리볼과 다음 만화속세상 게시판에 연재하고 있다.
김: 윤태호 작가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만화속세상’ 같은 곳에는 우리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다. 돈도 좀 되고. (웃음)
– 스토리볼과 만화속세상에 컨텐츠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어떤 기준으로 송고하나? 독자들 반응도 궁금하다.
김: 스토리볼은 전적으로 그쪽이 원하는 글을 가져가지만, 이런저런 내용의 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한다. 만화속세상은 우리가 직접 보여주고 싶은 기사들들을 선정해서 올린다.
만화속세상의 경우 처음에 일반 게시판에만 올렸다. 처음에 좀 글을 많이 올려달라길래 여러 개를 올렸더니 왜 도배하느냐는 항의도 댓글로 받았다. 오히려 다음 (담당자) 쪽은 원래 게시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담담하더라. 지금은 일반게시판에도 글이 올라가고, 그걸 모아서 별도 탭으로도 보여주는 식이다. 장기적으로 만화속세상 내에서도 별도 공간을 만들고 싶은 희망은 있다.
윤: 심지어 내 페이스북에까지 와서 “작가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이런 글도 올리시고. (웃음)
– 외부 필자 비중은 늘었나? 원고료는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하다.
김: 외부 필자는 아주 조금 늘었다. 원고료가 사실 많지 않다. 박인하 교수처럼 본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그냥 주시는 분도 있고, 그런 식으로 서로가 윈윈하는 방향에서 글을 싣는 경우도 있다.
윤: 욕망은 있으나 다 돈이기 때문에.
– 사이트에 광고도 조금씩 있던데, 광고 유치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인가.
김: 광고는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사실 종이 매체들도 처음 1년은 광고 수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6개월 정도는 돈을 못 받고, 광고하기도 한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매체가 망하면 손해를 보니까. 1년 이상은 매체가 지속해야 광고가 들어온다. 사이트를 지속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지난 4개월 ‘100점 만점에 30~40점’
– 지난 4개월, 어떻게 평가하나?
윤: 잘 버틴 것 같다. 아주 처음에는 다른 그림을 각자 그렸을 거다. 같은 자리에서 네 명이 회의하면서도 네 명의 그림이 다 따로 있었을 텐데, 구체화하고 목격하게 될 때까지 테스트 기간이 확실히 필요한 거다. 그런 면에서 이런저런 많은 메뉴 속에서 그런 지점들을 고민하고 있다. 내년쯤이 되면 조금씩 더 달라질 거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이 아니라 각 코너의 방문자 뷰라던가 수치 분석을 통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확신을 많이 가지게 된 과정이었다.
– 각자 바랐던 기대치를 100이라고 했을 때 지금은 어느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나?
윤: 40 정도? 왜냐하면, 지금은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지금은 힘을 비축할 때라서 모든 것,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김: 30~40 정도?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 우리나라에도 만화 마니아가 많은 것 같다. 독자 타케팅은 어떻게 하나?
김: 마니아라는 게 참 애매한 개념이다. 오덕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그 안에도 일본 만화에 치우쳐져 있는 집단도 있고 소위 구세대와 신세대(모에를 좋아하느냐 아니냐 같은)가 나뉘기도 한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 만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다. 복잡하다. 웹툰 독자가 62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전체는 많지만 세분화되서 명확히 타겟으로 삼기가 쉽지 않다. (윤: 시장으로까지 끌어올만한…) 하지만 만화가 산업으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만화작가 윤태호가 영화평론가 김봉석을 꼬신 이유
– 지난 인터뷰에서 윤태호 작가가 왜 하필 김 편집장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는지 (김 편집장에게) 물었었다. 이 기회에 윤 작가에게 직접 묻고 싶다. 왜 김 편집장을 끌어들였나?
윤: 시사인에서 김봉석 편집장과 [이끼] 영화 관련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일면식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김봉석 편집장이 영화계 내부를 향해 목소리 내는 강한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런 사람과 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 외에 만화 심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난 적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매체를 만들고, 폐간되고(웃음) 등의 과정, 운영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편집장의 비전이 매체의 비전이라고 생각했다. 편집장이라는 자리는 쓰고 싶은 글도 써야 하지만, 필요한 글도 써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동기 부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계 평론가들은 낭만적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매체 운영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많은 생각 끝에 임지희 기자를 통해 “편집장님 바쁘시냐” 했는데 핵심적으로 “안 바쁘시다”는 말을 듣고 연락을 했다. (웃음) 이런 질문은 굉장히 많이 받았다, ‘왜 만화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 나는 만화평론가는 저자여야 하지만, 편집장은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빌려 온다는 입장이었다.
말만 많고 아무도 하지 않는다
– 에이코믹스, 과연 먹고 살면서 지속 가능하겠나?
김: 처음 에이코믹스 시작할 때 ‘과연 되겠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사실 그런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잘 될 거라는 걸 알면 누가 그걸 안 하겠나. 예전에 다른 곳에서 일할 때 새 매체를 만들어서 시장 분석해서 기획을 가져가면, 사실 우리나라 회사들 같은 관료적인 조직에서는 반대부터 한다. 왜냐하면, 그거 괜찮은데 해서 시작했다가 망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게 싫은 거다. 그래서 다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이런 식이다. 너무 짜증 나서 이런 얘기도 했다.
‘아니, 누가 봐도 될 거 같으면 다 들어갔지!’
아직은 시장이 형성이 안 되어 있거나 복잡한 시장이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도전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상황만 보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사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새로운 매체가 거의 안 나온다. 라이선스 잡지 아니면, 모 기업에 후원을 받아 만드는 거 아니면 새로운 매체가 안 나온다. 그래서 그 나이에 왜 이런 걸 시작하느냐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특히 이런 비전도 없어 보이는 일을…
윤: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웃음)
– 시도하지도 않고 반대부터 한다는 풍토가 씁쓸하다.
김: (웃음) 뭐 사실 지금 나이니까 하는 거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경험이 있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리스크를 줄일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도 있고. 한국에서 잡지는 안 된다는 인식이 크지만, 사실 장기적인 실험을 해 본 매체가 없다. 된다 안 된다 말만 너무 많다.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비용을 줄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사실 학계 교수 정도 하면 비평지 정도는 비용 줄이면서 월간이든 계간이든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돈 끌어와서 할 생각만 하고 안 움직이면서, ‘에이코믹스 그거 왜 하니?’, 이런 얘기만 한다.
윤: 이런 류의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대체적인 시장 반응이지.
– 우리는 슬로우뉴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 얘기 같지가 않다. 그래도 슬로우뉴스보다는 상황이 좋아 보인다.
윤: (놀라며) 정말이냐?
– 정말이다. (…) 돈 얘기가 나왔으니, 윤 작가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윤: 무슨 소리냐. 만화로 돈 벌어본 게 [미생]이 처음이다. [미생] 하면서 10년간 쌓아놓은 빚 갚았다.
돈 문제 없으면 맘껏 펼치고 싶은 기획들
– 만약 필자 섭외와 취재에 (비용 등) 제약이 사라진다면, 어떤 기획을 실현하고 싶은가?
김: 무수하게 많다. ‘데일리 베스트 웹툰’도 세 명 이상의 필자를 써서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고 싶다. 상업적인 거 외의 것도 있다. 만화와 세계와 사회와 다른 장르의 연결이라던가. [PEN] 같은 잡지를 보면 세계의 뮤직비디오 특집 같은 걸 하면서 전 세계 뮤직비디오 감독을 직접 찾아간다. 우리는, 예를 들면, 프랑스 만화 작가들을 찾아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앙굴렘과 앙시엠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윤: 그런 부분은 정부 기관이나 관련 단체들도 관심이 많다.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 그 밖에는 또 뭘 하고 싶은가?
김: 미국 만화계의 시장 상황이나 행사는 어떤지, 가령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오면서 대중화되고 규모가 커지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옛날 만화를 부활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김수정 화백은 [둘리] 작가로 알려졌지만, [신혼부부], [날자 고도리] 같은 걸작 성인만화 작가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작품에 관한 평가는 거의 없다. 하고 싶은 것은 정말 많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부분만 하는 거다. 그런 기획이 실현되길 원한다면 후원을 해주시라!
– 기승전’후원’인가? (웃음) 내년 계획을 듣고 싶다.
김: 역시나 지속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제공자와 수용자가 컨텐츠를 가지고 계속 싸운다. 한쪽에선 돈을 주면 좋은 컨텐츠를 만들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좋은 콘텐츠를 보여주면 돈을 주겠다고 한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다. 지속해서 좋은 걸 보여주고 싶다. 6개월, 1년으론 부족하다. ‘계속 꾸준하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려면 더 버텨야 한다.
윤: 역시 돈이 문제다. (웃음)
– 슬로우뉴스도 마찬가지다. (웃음)
김: 일본 무크지를 보면 그런 게 있다. 나가이 고와 미우라 켄타로를 같이 이야기한다. 나가이 고의 [데빌맨]이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논하고, 비슷한 계보의 작품들을 좍 펼친다. 그리고 이런 비평들이 묶여서 책으로 나온다. 이런 게 필요하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인력과 데이터가 필요하니 쉽지는 않다.
윤: (에이코믹스를) 버리기 아까운 지점이 와야 한다.
교활하게 개판인 세계에서 만화작가로 살기: 윤태호
– 오늘이 귀국 날인 줄 알았으면 인터뷰 날짜를 조정할 걸 그랬다. 시차 적응이 힘들진 않나? [인천상륙작전] 한 회 분을 미리 마감하고 가느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윤태호(이하 “윤”): 만화가는 시차 적응 이런 거 없다. (웃음) 함께 간 일행 중에 나만 멀쩡하더라. 사실 귀국 날짜가 어제인 줄 착각해서 오늘로 인터뷰를 잡았다. 9일 정도 다녀왔는데 자동차 부품 수입 업체 등 많은 사람도 만났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 요르단의 패밀리 비즈니스라던가, 경제자유구역 취재 등을 했다. [인천상륙작전] 1회분을 미리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작품 취재차 남극을 한 달 반 동안 다녀와야 하는데, 출국 전 일주일 동안 7회분을 미리 만들어둬야 한다. (- 그게 가능한가?) 해야지.
‘만화에 무슨 비평씩이나’라는 편견에 관해
– 윤태호 작가의 글, ‘아키라에 관하여(1)편(2)편’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데 후속편은 언제 쓸 건가? (웃음)
윤: 내년에 남극 갔다 와서. 그 글은 정말 내가 쓰고 싶어서 썼던 글이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며 쓰느라 마음처럼 인용도 많이 하지 못했고 인용할 자료도 구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허영만 선생님의 [망치]에 아키라의 작화 기술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폭파 장면이라든가, 물 느낌의 화면이라든가. 그런데 그 책을 구할 수가 없는 거다. 그리고 [아키라]의 장면을 인용하는 것도 원작자 허락을 받아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 [아키라]라는 작품이 작가 윤태호에게 미친 영향을 서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서술한 점이 아주 신선했다. 댓글을 보면 독자들도 그 점을 좋아했던 것 같다.
윤: 이미 서사적인 관점에서 [아키라]를 해석하는 일은 다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남들이 하지 않은 이야기, 내가 나만의 체험적 관점에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그런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다.
윤: 아니, 내가 왜 그런 시험에 빠지나. 나는 내 작품만 하면서 편하게 살 거다. (웃음)
– 작가로서 개별 작품들을 비평하는 일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만화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예술 장르, 문화로서 소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에이코믹스라는 매체의 존재 이유도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김봉석(이하 “김”): 만화비평은 80년대 미술 비평으로서 시작되었다. 미술 작업을 하다 만화를 그리게 된 분들도 많았고,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리며 그때 오히려 담론이 더 풍부했던 듯도 하다. 그런데 이후 서사로 비평하게 되면서 단절된 부분이 있다. 만화학과들이 생기고 연구자들도 나왔지만, 비평보다는 ‘최초의 한국 만화는 무엇인가’ 같은 연혁적인 연구가 더 많았다. 만화 자체에 대한 학문적 비평이 턱없이 부족하고 나올 공간도 매체도 별로 없었다. 갈 길이 멀다. 일단 에이코믹스는 일단 일반 대중 대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을 수용하고 사이트 내에서 활용할 생각을 하고는 있다.
윤: 만화 비평은 돈이 안 된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지만, 직업으로 삼기가 매우 어렵고, 만화계 내에서도 작가와 업체 사이에서 포지셔닝하기가 어렵다. 누구도 그 가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글이 필요하면 부탁하긴 하지만, ‘만화에 무슨 비평씩이나’ 이런 태도가 분명히 만화계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 고를 땐 [씨네21]을 사 본다. (웃음) 만화인 스스로 비평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웹툰이 생기면서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졌다. 편집자나 이런 사람들보다 먼저 바로바로 독자와 접한다. 독자였던 사람이 종잇장 뒤집듯 작가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전적으로 도제식으로 만화가가 길러졌다. 그리고 만화가가 처음 만나는 건 독자가 아니라 편집자였다. 옛날엔 독자가 굉장히 멀었다. 그런데 지금의 작가는 독자가 워낙 가까우니 오히려 만화계 내부와 만화 전문가들은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데일리 베스트 웹툰’에 자기 작품이 언급되면 굉장히 좋아하고, 감사 댓글을 단다거나 소셜 미디어에 올리거나 한다. 이렇게 경향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전문가 질문 식상 … 독자 질문 오히려 흥미롭다
– 작품 할 때 독자 댓글도 확인하나?
윤: 예전엔 다 봤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안 본다. [미생]도 유료화된 다음에는 안 본다. 읽을만한 글보다 욕이 더 많아서 문하생들한테 중계받는다. (웃음)
– [미생] 댓글을 보니 작품 속 기보와 스토리를 연계해서 분석하고, 해설하는 분이 있더라. 이런 독자 비평의 가치도 무척 크다고 본다.
윤: ‘허허허’ 님이다. 에이코믹스가 추구하는 것도 ‘프로들’보다는 독자에게 먼저 향하고 있다. 에이코믹스가 독자를 작가에게 연결하는 깔때기가 되는 거다. 지금은 작가들이 자기 작품이 언급되었을 때 목소리를 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우리가 언급한 작품에 관해 목소리를 내주는 공간으로 에이코믹스가 자리하길 바란다.
– 윤태호 작가를 연구하는 분들은 없나?
윤: 블로그에서 많은 분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김: 사실 지금은 영화평론가도 평론만 해서 먹고 살기가 힘든 것처럼 만화를 연구하는 사람도 학교라던가 조직에 속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모로 현직 작가를 연구할만한 여력은 없는 것 같다.
– 전문 비평의 영역에 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김: 전문가들의 시선이 너무 패턴화되어 있다. 아카데미에서 연구한다는 게 대개는 연혁적으로 몇 년도에 이 작품이 나왔고, 몇 년도에 저 작품이 나왔고, 대개 이런 식이다.
윤: 그래서 개인적으론 사보 인터뷰나 직장인 강연은 많이 하려는 편이다. [미생]의 주 독자층이 직장인 아닌가. 가보면 굉장히 재밌는 질문을 한다. 상사들의 기질로 헌터적인 기질과 농부적인 기질 얘기를 하면서 이삭 줍는 여인들 패러디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자기들의 영업 스타일과 비교해서 보고 있었는데 결국은 이삭이나 줍고 하는 식으로 너무 허무하게 빠지지 않느냐, 이런 그런 미세한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그래서 언론의 식상한 질문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고, 다채롭다. 반면에 프로들이 하는 언론 인터뷰는 오히려 질문이 뻔하다. 취재는 어떻게 하나, 잠은 얼마나 자나, 이런 것들. 내가 에이코믹스에서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더 교활하게 개판인 세계
– 윤태호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소외된 자에 관한 애정이랄까, 안티히어로에 관한 애정 같은 게 느껴진다.
윤: 애정 없다. (웃음) 그들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잘살 수 있어!’ 이런 걸 그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게 아니라 작품 속 인물과 사회를 그저 목격하게 하고 싶다. 등장인물과 거리를 두고 싶은 거지. 사실 젊을 때는 좀 더 열정적으로 인물에 개입해서 묘사하긴 했다.
– (그런 열정 때문에) [야후]를 무척 좋아한다.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정주행한다.
윤: 안 된다. 그러면 철이 안 든다. (웃음)
– 안티히어로가 있다면 히어로도 있다. 히어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나?
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야후]도 영웅을 만들겠다기보다는 ‘얘가 어떻게 죽나 한 번 봐라’,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다. 그때는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그렸다. 삼풍백화점 무너졌을 때(주: 1995년) 스포츠 중계식 보도가 나오고 나중에 누가 책임졌는지 결과는 안 나오고. 그런 것들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 지금 대한민국에 관해선 어떤 생각이 드나?
윤: 만화판 얘기나 하자. (웃음)
– 사실 만화도 당대의 세계를 반영해서 형상화하는 것이 아닌가. 현실이 개판일수록 역설적으로 걸작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윤: 교활하게 개판이라서 더 다루기가 어렵다. 점점 더 작가들이 순수해지고 있다. 사회상과 관계없는 작품을 하느라 애쓰는 것 같다.
– 작가가 ‘순수’해진다는 건 자기 검열 같은 게 작동한다는 건가.
윤: 자기 검열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체념? 회의?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지금 사회 모습을 봐라. 정권이 어떻다, 정세가 어떻다는 차원보다는 ‘상식적이냐 아니냐’는 차원에서 봤을 때 좀…
– 상식적이 아니라는 얘긴가.
윤: 점점점(……)으로 써 달라. (웃음)
어린 시절 기억들 “새털구름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 TV나 영화 등 다른 매체들은 많이 접하는지 궁금하다.
윤: 작품 할 때 소음이 좀 필요해서 TV는 계속 켜놓는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왠지 폐쇄적인 느낌이어서 TV를 튼다. 나는 진공 상태 같은 느낌을 못 견딘다. 어릴 때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가서 산 적이 있는데, 넓은 논이 있는 평야 지대였다. 여름 해 질 녘이 되면 습도가 높아지면서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시간대가 있다. 뭔가 좀 이상해진다. 벼들이 흡음재 역할을 해서 소리가 안 퍼진다. 오후의 정적. 그럴 땐 막 뛰어도 발소리도 잘 안 들린다. 그런 걸 정말 못 견디겠더라. 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셔서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 혼자 집에 있다가 미숫가루 먹다 목이 막혀서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웃음)
– 작가의 유년, 사춘기, 청년 시절의 체험은 어쩔 수 없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다. 가령, 소설가 박영한의 작품은 보면 여자는 드세고,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젊은 시절에 연애에 자주 실패해서 그랬다고 하더라. 연애 경험은 어땠나?
윤: 그게 왜 궁금한가? (웃음) 내가 연애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이유 같다. 나는 연애 이야기 거의 다루지 않는다. [미생]에서도 연애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온다. 여자를 잘 모른다.
– [미생]의 러브 라인을 기대했던 독자들도 있다.
윤: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웃음)
– 그러니까 연애를 별로 하지 않았다?
윤: 그런 건 아니고 자기 기분에 빠져서 자기 위주로 연애했다는 뜻이다.
– 어린 시절 얘기를 더 듣고 싶다.
윤: [이끼] 같은 경우 배경이 시골이다. 시골은 기본적으로 좋다.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그런데 어떤 시골은 무서울 수 있다. 씨족이 오랫동안 살았던 지역이라던가. 어제까지 보고 지냈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거나. 집집이 있는 농사짓는 기구들도 어린 나에겐 너무너무 무서웠다. 나는 전라도 평야 지대에 살았는데, 높은 하늘이 너무 무서웠다. 새털구름은 정말 징그럽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 새털구름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인데 무섭다니 이상하다.
윤: 붉은 노을이 새털구름을 물들이는 풍경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평야라는 게 눈앞에 바로 집이 보여도 정작 걸어보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런 기억들이 있다. 그런 풍경에 관한 느낌들이 있었다.
– 그 유년의 체험은 공간에 관한 감수성에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윤: 풍경, 공간에 대한 불신이랄까. 저수지 물 빼서 미꾸라지를 잡아 안주로 먹는 풍경도 어린 나에겐 참 무서웠다. 돼지 소 잡아서 김 모락모락 나는 간 먹고 피 마시고 이런 것도. 바닥엔 피가 흥건하고 동네 개들은 혀 날름거리고 있고. 나는 그런 걸 못 먹으니까 또래 아이들에게 희한한 아이로 취급받고… 한 번은 산불이 났는데, 회오리 바람이 불어 그 산불을 휘감아 도는 풍경도 기억난다.
한국에서 만화작가로 가족을 부양하며 산다는 것
– 윤 작가는 ‘아키라에 관하여’를 쓰면서 시각 예술로서 만화를 강조했다. 세밀한 시각적 묘사, 가령 옷 속에 숨겨진 인체의 감각까지 이야기했는데, [미생]을 보면 서사와 캐릭터에 집중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어떤가?
윤: 한국에서 중견 만화가로 4인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문하생이 4명이니 사실상 8인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작가의 몇 배나 되는 작업을 해야 먹고 사는 방편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즉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림이 굉장히 경제적이어야 한다. 허영만 선생님이 그런 경제적이면서도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분이다. 모든 컷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적절하게 분배를 잘해서 작품 전체를 봤을 때 충족감을 준다. 여백이 많아도 그저 빈 공간이 아니라 다 의미가 있다.
사실 이런 생각도 한다. 만약 나에게 누군가가 말한다고 치자. ‘지금 벌고 있는 그 돈을 한 작품 40페이지만 해도 줄 테니 잘 그려봐라.’ 그렇게 된다면 과연 내가 만족하는 퀄리티에 지금과는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사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작가 자신의 개념이 발현하는 것이다. 이전과는 그림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그림이 안 나온다는 거다. 더 잘 그릴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미생]의 그림과 다를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오토모 카츠히로가 [사요나라 니뽄] 같은 단편집을 냈을 때의 그림과 [아키라]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그건 인식 체계 자체가 달라져야 나올 수 있는 그림이다. [동몽]을 통해서 ‘난 이렇게 변하겠어’라는 틀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맞는 그림이 나오는 것이지, 그리다 보니 우연히 [아키라]까지 도달했네, 이런 건 없다는 거다.
– 지금 다시 [미생]을 그리는 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경제적인 그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민가?
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이 독자층과 함께 바뀌었다면, 인구도 판매 시장도 늘어나고, 고료 체계도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춰 나갔을 거다. ‘오늘부터 시작!’ 이런 게 아니라 대중작가로서 독자들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작업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서서히 변화해나가다 어느 순간 ‘이런 작품을 하겠어!’라고 결심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 지향에 따라 작품을 해나갔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키라]에 도달했을 수도 있고, [드래곤 헤드]나 또 다른 무언가에 도달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한국 환경은 크게 변화가 없었고 작가가 어떻게 하면 작품 활동을 하며 4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명한(웃음) 선택을 강요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그림 자체는 더 경제적으로 가는 것 같고, 대신 이야기에서는 좀 더 일본적인 세밀함을 추구했던 것 같다. 실제로 [미생]할 때도 그림은 한 화에 10~12시간 정도에 마감이 끝났지만, 스토리 때문에 시간을 많이 썼다. 스토리 쓰는 동안 문하생들은 취재 자료로 배경 등은 미리 만들어 두는 식으로 작업했다. 특히 인물의 대사에 쓰이는 단어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단어 하나가 막히면 진도를 올 스톱했다. 한밤중에 아이디어가 막히면, 취재 도와주시는 분들이 일어나는 아침까지 밤을 새운 적도 많다.
– 그 정돈가? 사실 윤태호 작가 정도면…
윤: 붓이 알아서 간다고 생각했나 (웃음)
– 그렇다기보단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마감이나 작업 시간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윤: 압박하는 사람은 없다. 나 스스로 마감 다음 날 대학 강의 일정을 잡아서 배수의 진을 쳤다. 강의 나가기 전까지는 무조건 원고가 끝나야 했다. [미생]이 정상적으로 연재가 끝난 건 세종대학교 강의가 컸다고 볼 수 있다. 마감을 못 하면 수업이 펑크 나니까.
– 강의는 어땠나.
윤: 힘들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현장에 들어올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게 스스로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 내 생각도 1년 전과 6개월 전이 다르다. 그런데 어떤 확신으로 가르쳐야 하나 고민된다.
– 10년 전 노트 가지고 계속 강의하는 일부 교수들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윤: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웃음)
– 강의는 앞으로도 계속 할 건가?
윤: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자르지 않는데 그만두겠다는 말은 못하겠더라. 이현세 선생님의 제안이기도 해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너무 바빠 “잠 못 자서 죽겠어요.” 이러면 이현세 선생님은 “좋~을 때다”라고 하신다. (웃음)
영화 [파고] 50번 넘게 봤다 보고 보고 또 본다
–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누군가.
윤: 역시 허영만 선생님. 그리고 이상무 선생님. 허영만 선생님 작품은 지금도 자주 읽는다. 이상무 선생님의 시적인 대사들을 무척 좋아한다. 어쩌면 이상무 선생님의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순정만화라고 할 수 있다. 자를 안 대고 그리는 풍경 묘사도 너무 좋고, 여백도 너무 아름답다.
– 영화로 치면 영화광의 전통에 선 감독이 있고, 그 반대편 감독이 있다. 만화 작가로서 스스로는 만화광이었나? 아니면 그 반대편에 가까웠나?
윤: 독자로서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풍요롭게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만화 작가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다른 작품을 적극적으로 접하진 않는 편이다. 일단 너무 바쁘다. 그 시간에 나 자신에 관해서 학습하는 편이다. 유년시절이 풍족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몇 작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늘 부족하다.
– 영화는 좋아하나.
윤: 보고 또 보는 걸 좋아한다. [파고] 같은 건 50번은 봤을 거다. [록키 1]도 많이 봤다. [야후]하면서 전형성에 대한 고민을 풀려고 [타이타닉]도 여러 번 봤었다. [파고]는 그냥 아무 때나 틀어서 본다. 쉰다, 그러면 본다.
– [파고]라고 하니 [이끼]와도 유사한 느낌이 든다.
윤: [이끼]는 사실 세련되지 못했지. 쿨함이 없었다. 빨리 걷고 싶은데 몸에 땀이 많아서 걸리는 느낌이었달까? 바지에 안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웃음) [파고]를 보면 모든 것이 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느낌이다.
– 쿠엔틴 타란티노는 전형적인 영화광 감독인데, 윤태호 작가는 그 반대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윤: 그런 사람이 부럽긴 하다. 풍요로운 사람이지.
– 무인도에 만화 다섯 작품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걸 가져가겠나.
윤: 다치바나 다카하시의 책 중에 출판사 의뢰로 무인도 체험을 쓴 게 있다.(주: [사색기행]) 다카하시는 일주일 동안 무인도에서 버텨야 하는데 3일 만에 포기했다. 그 사람 결론은 먹을 것을 해결하기도 하루는 짧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최소한의 물만 줬거든. (웃음) 다카하시가 책을 몇 권 가져가긴 했는데, 뭐라도 잡으면 불쏘시개로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 그럼 모든 것이 제공되는 호텔 방에 1년 동안 감금된다고 가정해보자. (웃음)
윤: 만화보다는 소설, 소설보다는 영화를 가져갈 것 같다. 만화 쪽으로는 다른 작가가 만든 세계가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인생이 짧다. (웃음)
– 그럼 [파고]를 가져가겠네.
윤: [파고] 가져가야지.
– 벌써 연말이다. 내년 혹은 장기적으로 에이코믹스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뭐가 있을까.
윤: 족보 만들기를 해보고 싶다. 로봇 만화란? 범죄 만화란? 그리고 이 작품이 누구의 영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나, 계보도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 ‘여기서 소개한 작품을 모르고서는 오덕이 아니다’ 그런 느낌을 주는, 마치 ‘(오덕) 라이선스’를 주는 것 같은 컨텐츠를 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에이코믹스의 과거, 현재와 미래 뿐 아니라 윤태호 작가의 작품세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간 인터뷰였다. 만화 작품 외에 만화와 작가에 대한 정보, 감상, 비평 등을 다루는 매체가 사실상 전혀 없는 환경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에이코믹스가 자신들의 계획처럼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Fast is good, slow is better”, 슬로우뉴스에도 함께 게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