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올림.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타임캡슐] 『철완소녀』 강한, 너무나도 강한 그녀
아무리 말로든, 이성적인 생각으로든 남녀 평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남자로서의 나와 남자와 여자로서의 타인으로 구분되는 이 심층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어찌하기가 참 힘든 것 같다. 겉으로야 차별과 차이에 대한 배려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하지만 그것조차도 편견에서부터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야 남자라는 속 편한(나름의 어려움은 있지만) 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게(물론 당당하게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새삼 머리가 숙어지니까.
굳이 ‘철완소녀’라는 이 작품을 얘기하면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긴 한데, 사실 이 만화가 페미니즘적인 문제를 논하는 그런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배경은 2차 대전 패전 후 미군 주둔 하의 일본이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 여자였던 카노우 토메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 여자 프로야구 선수로서 마운드에 서게 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팀은 미국 여자 야구단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이 작품은 강한 여자의 이야기이며, 여자 프로야구를 쇼 비지니스로 이용하는 일본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이며, 패전의 고통을 일-미 여자 프로야구단의 대결을 통해 위로 받으려는 일본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너무 단순한가? 그럼 할 수 없고. ^^;)
‘철완소녀’는 ‘지뢰진’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많은 매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는 타카하시 츠토무의 작품으로 고단샤(講談社)의 ‘주간 모닝’에 연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산문화사에서 6권까지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지뢰진에서도 익히 보여주었던 음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진만큼(누군가는 서늘하게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라고 하던데)의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힘든 약점은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만 그럴 수 있는 것이, 패전 후의 일본이라는 상황 설정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인 듯 하다. 즉, 여자이기 때문에…와 함께 패전국의 국민이기 때문에…라는 두 가지의 상황을 모두 이해해야 빠져들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일 야구단의 대결이 수포로 끝난 후(일본팀의 승리가 다가오자 미군정은 경기를 무효화 시켜버린다), 6권부터 카노우 토메가 전쟁물자 중계상으로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스토리가 나온다. 이 전쟁물자는 한국전쟁에 대비한 것이며, 미국과 일본의 자본가들은 이미 한국전쟁의 발발을 예견하고 군수보급기지로서의 일본의 역할을 준비해 온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설정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반감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보고 있는 작품이다. 머, 물론 타카하시 츠토무라는 작가 자체를 워낙 좋아하는 취향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이 편협한 민족주의나 제국주의에 휩싸인 그런 만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휩싸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서울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런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보아주어야 할 우리 만화에 대한 독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 박흥용 님의 ‘내 파란 세이버’라든가 윤태호 님의 ‘야후’ 등 우리에게도 우리의 아픈 역사적 과거를 만화적 재미와 함께 녹여내는 역작들이 있으니까.
히로카네 켄시의 ‘정치9단’, 카와구치 카지의 ‘침묵의 함대'(그리고 최근작인 ‘지팡구’) 등등 너무나 일본적이고 보는 방향에 따라 극우적으로도 보이는 그런 작품들에 대한 바른 입장을 갖는 것과 함께 좋은 우리 만화를 찾아 보는 노력도 역시 필요하다는 거. 그런 얘기다.
오늘도 시작과 끝이 연결되지 않는군 ㅡㅡ;
참고사이트 :
- http://www.mmsbook.co.kr/book/view/09-15/15-15-015.htm (현재 사이트 없어짐. 이럴 때는 원문 카피해둘걸 하는 생각이 절로. 2010. 05. 13)
- http://www.yes24.com ‘철완소녀’를 검색한 후 독자서평 참고
Written by 뗏목지기 (200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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