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코리아 2016년 06월호 DADDY COOL 코너에 실은 글.
식탁에 앉아서 아내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거실에서 책을 읽던 OO이가 물 먹고 싶다며 식탁 옆을 지나간다. 싱크대 위 식기 건조대에서 컵을 꺼내 왼손에 들더니 오른손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컵에 따라 마신다. 연결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다. 가만,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기 건조대에 손이 안 닿았는데? 그리고 언제부터 물이 가득 든 유리 물병을 한 손으로 들 수 있게 된 거지?
어린이날, 선물 대신 나들이
이번 어린이날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아이가 원하는 터닝메카드 그리핑크스가 어디나 품절이기도 했지만, 어린이날을 ‘당연히’ 선물 받는 날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게 아내와 내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OO이를 불러 앉혔다. “어린이날이라고 선물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건 아니야. 네가 원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평소에도 엄마 아빠와 의논하면 살 수도 있는 거거든. 선물은 없지만, 다같이 나들이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놀면 어떨까?” 말하고 나니 의외로 OO이는 쿨하게 알겠다고 한다. 어쩐 일이지 생각하는데 역시나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나는 그리핑크스가 갖고 싶으니까 한 달만 더 기다릴게. 엄마 아빠가 잘 의논해줘~” 그러니까 다른 부분은 빼고 ‘평소에도 의논하면 살 수도 있는’ 부분만 들은 거네. (…)
일단 선물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나들이를 준비했다. 5월, 그리고 어린이날에 딱 맞는 그런 화창한 날이었다.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가기로 하고 서울숲을 갈까, 한강공원 뚝섬지구를 갈까 하다 아이가 고른 서울숲으로 향했다. 아내가 만든 도시락, 음료, 과자, 야외용 매트, 빠뜨리면 서운한 캔맥주(!) 등을 챙기고 지하철을 탔다. 서울숲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는 차들을 보면서 지하철을 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OO이는 숲속 놀이터와 거인상을 좋아한다. 여름에는 물놀이터와 바닥분수에서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OO이에게 서울숲의 마지막 코스는 항상 방문자 센터 근처에 있는 숲속의 작은 도서관이다.
너 언제 이렇게 자랐니
요즘 자격시험을 준비하느라 평일 저녁과 주말을 거의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다. 덕분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나들이도 오랜만이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놀이터에서 알아서 잘 논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미끄럼틀도 타고 동굴도 드나들고 거인상도 오르내린다. 처음 보는 또래들에게 마치 예전부터 알던 친구인 것처럼 말을 걸고 얘기도 나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볼은 햇빛에 발갛게 달아오른다. 돌아다니다 넘어져 다치지는 않을까, 길을 잃어버리고 딴 데 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놀이터 안에서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녀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렇게 자랐나 싶다.
한참 놀던 OO이가 와서는 원반던지기를 하자고 한다. 원반을 주고받다 보니 처음 원반던지기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재작년 즈음 아이 친구들 가족과 함께한 나들이에 누군가 원반을 챙겨왔다. 그 왜, 외국 영화나 광고 같은 데서 가끔 그런 풍경이 나오지 않나.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 남과 여, 아이, 강아지, 그리고 원반. 슬로 모션으로 이어지는 화면에서 원반은 공중을 날고 강아지가 훌쩍 뛰어 원반을 입에 물면 활짝 웃는 등장인물들 클로즈업. 하지만 그런 장면은 어림도 없었다.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무리 요령을 가르쳐도 원반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거였다. 어림도 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아니 잔디밭을 굴러다니는 원반을 쫓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원반을 ‘주고받고’ 있다.
여전히 철없는 아빠지만
대부분 사람은 과거의 힘들고 어려운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는다. 아마도 심리적 방어기제일 텐데, 자신의 경험이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리면 마음이 힘들어지기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인 사람이라 그런 포장을 못 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 남자가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군대 생활도 그렇다. 배운 게 없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부조리하고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100일, 첫 돌 전까지 힘들었던 육아도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모든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지는 않았다. 웃는 거 보면 그냥 좋은 거지 육체적으로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사실이 그렇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육아를 통해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낯 뜨겁다. 그런데도 뭐 요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좀 신기하긴 하다. 감동 같은 거 말고 그냥 신기한 거. OO이는 한참 전부터 두발자전거를 한 손으로 탈 수 있다.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않으면 곧 외발자전거도 탈 기세다. 욕실 낮은 위치에 달아둔 수건걸이는 이제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 학습만화만 보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꽤 길고 그림도 별로 없는 동화책도 재미있다고 끝까지 잘 읽는다. 나보다 잘 알고 잘하는 것도 많아졌다. 스마트폰 게임, 그리스 로마 신화, 마법 천자문으로 단련한 한자 실력같은 것들.
나를 다듬어 주는 너
물로 앞으로도 꽤 긴 시간 동안은 내가 OO이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 것들이 더 많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요 몇 달간 훌쩍 자라 주위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가 이 아빠에게 꼭 짜서 되돌려주는 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요즘 잔소리가 엄청 늘었다. 내가 운전할 때면 속도계를 들여다보며 과속하지 말라 하고, 길을 걷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인도에서 내려서면 호통을 친다. ‘지구가 아프지 않게’ 물도 아끼고 분리수거도 잘해야 한단다.
그보다 더 큰 가르침도 있다. 아이가 퇴근길에 다다다 뛰어와 “아빠!” 하고 부르며 안길 때, 잠자리에서 엄마 품 아빠 품을 찾을 때면, 이렇게 이유와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 순수한 애정이라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몇 달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퇴근이 늦어진 저녁에 아내가 몸이 아팠었나 보다. 집에 들어와서 보니 OO이가 물수건을 엄마 이마에 올려주고 있었다. 엄마가 시킨 건 아니란다. “엄마도 내가 전에 아팠을 때 물수건 올려줬잖아. 그래서 나도 엄마 빨리 나으라고…”
이런 일을 한 번씩 겪으면 마음속 이기적인 나의 한 귀퉁이가 깎여 나가는 느낌이 든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난 돌이 되어 버린 이 아빠를 아이가 둥글둥글 다듬어 주는 그런 느낌 말이다. 말하자면 이 사랑스러운 8살 소년 덕분에 나는 질서를 잘 지키고, 지구를 사랑하며, 편식도 하지 않고, 이유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하며 덜 까칠하게 구는, 예전보다 아주 깨알만큼이지만 더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하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멋지고 고마운 일이다.
뗏목지기
일, 가족, 사회, 만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잡다한 인생. 기본은 남자 사람. 아이폰6와 맥북에어를 아끼는 시스템 엔지니어, 슬로우뉴스(slownews.kr) 편집위원. OO 아빠. 뗏목지기라는 닉네임 뒤에서 살고자 했으나 페이스북에 의해 실밍아웃당한 뒤 자포자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