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즈음 “겨울왕국”이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이 경우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이고 외국 영화로는 아바타와 함께 둘 뿐인 천만 영화가 된다. 이에 따라(음?)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렸던 겨울왕국 관련 잡다한 생각 몇 개를 정리해서 올려 본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1.
아이는 초반부 왕과 왕비가 배 타고 나갔다 폭풍우로 죽는 걸로 묘사되는 장면이 인상 깊었나 보다.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짧게 묘사되었다. 왕과 왕비가 배에 타고, 폭풍우 치는 바다에 떠 있는 배가 나오고, 왕과 왕비의 그림(영정)에 검은 막이 내려지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아이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엘사와 안나의 엄마 아빠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길래 하늘나라로 간 거라고 했더니, 요즘 들어 뜬금없이 자기는 앞으로 배는 절대 안 탈 거라 하고, 엄마 아빠 하늘나라 가면 나 혼자 어떻게 사느냐며 울기도 하고 그런다.
페이스북에는 댓글이 몇 개 달렸는데 우리 아이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극장에서 그 장면 나오고 우는 아이를 봤다는 분도 있고, 심지어는 아이가 집에 가자고 해서 영화를 다 못 보고 나온 사례도 있었나 보다. 미처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아이들에게는 부모와의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이 상당한 공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2.
아이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멋진(?) 해답을 들려줬다. 왕과 왕비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폭풍우를 만났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너무 먼 나라까지 떠내려가는 바람에 아직 아렌델로 돌아오지 못한 것일 수도. 그렇다면 속편은 엘사와 안나의 엄마(와 아빠) 찾아 삼만리?
아이에게도 들려줬더니 대단히 안심하길래, 뭔가 살짝 찔리면서도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아무튼 그 다음주에는 에버랜드 로스트밸리에서 수륙양용차를 타고 급류를 흐르는 아마존 익스프레스를 신나게 즐기고 눈썰매도 잘 탔다는 결말.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두둥)
3.
천만을 앞두고 있다는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겨울왕국이 대세는 대세인 모양. 우리 가족은 한 번밖에 못 봤지만, 아이 말로는 어린이집에는 몇 번씩 본 애들도 있다 하고, 안 본 애들은 은근히 멀뚱멀뚱해지는 분위기인 듯하다. 책과 OST도 잘 팔린다고 한다.
우리 집의 경우는 예전엔 아침마다 어린이집 보내려고 아이를 깨우는 게 큰일이었는데, 요즘은 겨울왕국 OST만 틀어주면 벌떡 일어난다. 아이가 겨울왕국 동화책을 어린이집에 가져갔을 때는 꺼내는 순간 아이들이 함께 렛잇고 합창을 했다고.
4.
겨울왕국에 대해서는 주변 부모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너그러운 분위기다. 성인들도 즐길 수 있게 잘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 등에 비해 덜 폭력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사실 상당수의 부모들은 파워레인저 같은 걸 싫어한다. 나는 좋지만…)
디즈니는 사실 악당들에게 얄짤없기로 유명한 편이다. “주먹왕 랄프”의 악당 킹 캔디는 화산 속으로 날아가 소멸했고, “라푼젤”의 마녀 고델은 탑 아래도 떨어진 후 가루가 되어 사망, “뮬란”의 악당 샨유는 폭사, “인어공주”의 마녀 우르슬라는 돛대에 배가 관통하는 등… 그런데 겨울왕국은 죽는 캐릭터가 없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관객들을 충공깽에 빠뜨린 희대의 잡놈 한스도 위즐턴의 공작도 그냥 추방으로 끝나고, 심지어 절벽으로 떨어진 마시멜로도… (읍읍)
이쯤에서 ‘디즈니 악당의 죽음 Top 15’라는 영상을 감상해 보자. 아주 난리다.
5.
마지막으로 올라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디즈니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 것은 아니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유쾌함, 낙천성, 헌신, 배려 등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주먹왕 랄프”의 바넬로피가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얘는 좀 악동스러운 면이 있어서 올라프의 등장과 함께 살짝 2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