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올린 글 백업용.
난 요리에 있어서는 소위 레시피 주의자다. 레시피가 없으면 요리 시작도 못 하고, 빠진 재료가 있으면 불안해하며, 용량도 가능하면 정확히 맞추려고 애쓰는 편이다.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가만 생각해 봤는데 대학교 MT 때의 일이 원인인 듯.
카레 대란
우리 조는 첫 끼니를 카레로 정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우선 카레를 물에 풀어 두려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카레를 뜯으면서 보니 5인분이라고 되어 있어서 다 들이부었는데 이게 아무리 저어도 풀어질 생각을 안 하는 거다.
그래서 빈 봉지를 다시 잘 들여다보니 50인분… 숫자 0 사이를 절묘하게 뜯어버리는 바람에 언뜻 5인분으로 착각을 한 것.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 끝에 일단 5분의 4를 다른 냄비에 덜어냈다. 남은 5분의 1에 물을 더 부어서 풀고 일단 완성. 나머지 5분의 4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조는 2박 3일에 걸쳐 매 끼니를 카레로 먹었다.
덕분에 뗏목지기는 조원들에게 있는 구박 없는 구박을 다 받았고 한동안 다들 카레를 입에 대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쉬운 요리를 해도 레시피를 꼭 확인하고 라면을 끓일 때도 봉지에 쓰인 물 양과 끓이는 시간을 준수하는 그런 인간이 되었습니다. (…)
오징어 대란
역시나 또 다른 대학교 MT 때 일인데, 선배 한 분의 아버님께서 수산시장에서 해산물 도매업을 하셨었다. MT를 간다고 하니 가서 나눠 먹으라며 생물 오징어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내주셨다. 몇 상자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인원보다는 턱없이 많은 양이었다.
이쯤 되면 이어질 이야기가 짐작되실 터.
2박 3일동안 오징어만 주야장천 먹었다. 오징어덮밥, 오징어 볶음밥, 오징어찌개, 오징어 볶음, 오징어 조림, 오징어숙회, 오징어무침, 등등… 여건에 맞춰 만들 수 있는 갖가지 오징어 요리를 다 맛봤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술자리 게임 벌칙으로도 먹었지 아마… 오징어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도전 오징어벨 뭐 이런 분위기.
결론은? 뗏목지기를 포함한 엠티 참가자 대부분이 그 후 한 달 이상 오징어를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입에 올리는 것도 금기시.
그러고 보니 이 부분은 레시피 주의와는 상관없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