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행복한 시간』 가족의 파괴, 그리고 행복
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갔다 왔습니다. 운 좋게도 회사가 주5일 근무인지라 금요일 퇴근하고는 9시쯤 일행들과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11시 55분 기차로 서울을 떴습니다. 월급날 직전인지라 돈 한푼 없으면서도 카드 한 장으로 결제하고 현금 서비스 팍팍 받아서는 갔습니다. 울 엄마가 알면 철없는 놈이라고 한 대 맞았겠지요. ^^
희한하게도 영화제나 축제 같은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대구 살면서 동성로 축제 구경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PIFF니, PIFAN이니 늘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아… 이제 직장생활도 시작했고, 마음 먹었을 때 한 번 해 보지 못하면 평생 ‘회사인간’이 되어서 주말에도 일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생겼던 거지요.
하여간 잘 놀다 왔습니다. 이미연과 종려시는 역시 예쁘더군요.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습니다. ㅜㅜ 화장실 앞에서 사인 받은 한대수 선생님도 재밌는 분이셨구요. 영화는… . . . 그게 머죠? ^^;;;
장 이모우 감독의 ‘행복한 날들’을 봤습니다. 눈 먼 소녀에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꾸미는 노인의 모습은 참 따뜻했습니다. 눈 먼 소녀가 노인을 만져보면서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군요. 사람의 삶은 때론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겨다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에 ‘행복한 시간’이라는 만화작품을 떠올렸습니다. 장이모우 감독 작품의 영제가 ‘Happy time’이었는데 직역하면 이 만화작품의 제목과 같거든요. ^^ 그러나 이 작품은 제목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이고도 ‘언해피’한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부부와 남매의 단란한 가정에 한 여자가 끼어들고 남편은 그 여자와 불륜행각을 벌이고, 아내도 다른 남자와 불륜을 벌이고, 여동생은 아버지의 친구와 관계를 가지고, 오빠는 집을 나가 제 또래의 여자와 동거를 합니다. 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들을 모아놓은 듯한, 그런 작품입니다.
이 작가는 과연 가정이란 공간이 외부에 보여주는 따뜻함과 단란함은 애초에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 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추악한 욕망들을 포장하는 재료로서만 가정은 존재하는 듯 느껴집니다. 결국 마지막에 가족은 다시 모이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채로 독자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 채 끝을 맺지요.
행 복이란 단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한 영화작품과 행복이란 단어를 역설적으로 비틀어버리는 한 만화작품을 보면서, 도대체 행복이란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전에 다른 작품을 소개하면서 ‘죽음’이 인류의 영원한 수수께끼라는 얘기도 했었지만, 사람에게 삶이 있는 이상 이 ‘행복’이란 단어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P.S. 이 작품은 다이나믹프로에서 19권으로 완간 되었습니다. 다이나믹콩콩 코믹스로 80년대 해적판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이 출판사가 ‘뉴 다이다믹 콩콩’이란 이름으로 작품들을 내기 시작했네요. 대단히… 끈질긴 회사로군요. 전 깜딱 놀랐었습니다. ㅡㅡ;
Written by 뗏목지기 (200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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