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야후』의 작가 윤태호를 만나다
“개인의 분노와 좌절, 절망과 증오에 대해 이 사회는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야후’ 1권은 필자에게는 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붕괴된 건물에 사람이 깔려 죽는 모습,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은 보상금을 돈만 아는 담임에게 뿌리고는 학교를 그만두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휴가만 나오면 그 동안 발간된 단행본을 보고 또 보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얼마 전 김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 작년 수해의 악몽을 전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인사를 나누던 이웃이 폭우에 붕괴된 토사 밑에 시체로 놓여있고, 떠내려간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걸어서 낙동강 지류를 헤매고 나니던 노모의 이야기들. 나는 그 이야기로부터 다시 ‘야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사건도 그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데, 우리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그 죽음의 현장들에 빼놓지 않고 존재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해갈까.
이 인터뷰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작품인 ‘야후’는, 인터뷰 내용처럼 한국의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질러 사건과 사고의 중심에서 살아온 한 남자의 폭주에 관한 기록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체를 사용하는 수도경비특수기동대라는 가상의 존재를 역사적인 사실과 실타래처럼 교묘하게 엮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 윤태호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14권 서문에 보면 2001년(2002년인가요?)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 참석하시고 ‘야후에 대해서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쓰셨습니다. 2003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는 한국이 ‘주빈국’이 되고 윤 작가님의 ‘야후’가 한국만화 특별전의 ‘만화와 욕망’ 섹션 참가작품이었는데요, 이번에 앙굴렘 페스티벌에 참가하신 소감은 그때와는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사실 이번 앙굴렘은 일정상 작품만 가고 전 가지 못했습니다. 마감이 겹쳐서 가기 힘들었죠. 지난 앙굴렘에선 제가 썼듯이 야후뿐 아니라 대다수의 우리 만화의 외면적 초라함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외면적 초라함이란 출판사의 대량생산에 맞추어진 실용 그 자체의 제본들이라는 거죠. 거기에는 어떤 예술적 감흥도 없이 보여주는 데만 목적이 있는 그런 것들이 있죠.
그런 점에서 내 스스로 얼마나 내 작품을 막 대해 왔는지…출판사에서 어떻게 찍어내든 그것은 출판사의 권한이고 내가 상관할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또는 내 작품에 그렇게까지..하는 자기 비하도 얼마간 깔려있었죠. 이번의 앙굴렘도 그런 점에서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적어도 보통의 출판만화 같은 경우엔 말이죠. 다행이 각종 인터넷 만화들이나 최근의 독창적인 펜선을 보유한 신인작가들의 돋보이는 활약으로 제 안타까움이 조금은 메워진 것 같군요.”
각종 언론에서는 금년도 앙굴렘에서 한국이 주빈국이 된 것에 대해 한국만화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등의 평가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 한국 내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만화의 위상이나 만화출판계의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독자들은 대여점이나 인터넷 불법 스캔 등으로 쉽게 만화를 즐기고, 능력 있는 작가들은 스포츠신문 등을 통해서 살 길을 찾는다. 대면 인터뷰였다면 여기서 한국만화의 현재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야후’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로망스’로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에 선정이 되실 정도로 상복이 많은 작가이신데요,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본인의 작품이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흔히 다루지 않았던 소재들에 점수를 주신 것 같고 그것을 상업적으로 풀어내려 했다는 것에 응원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수상작들을 보면 상업적인 것과는 별개로 선정이 된 감을 지울 수 없는데 진지하거나 독특한 소재를 보다 많은 대중과 호흡하려 어떻게 작품을 풀어냈느냐에 좋은 평가를 주셨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코믹 인터뷰에서 문하생 시절이 길었지만, ‘데뷔하기 전까지 조바심은 없었다’라고 하셨는데요, 여러 작품을 발표하신 지금은 활동하시면서 조바심을 느끼신 적은 없으신가요?
“사실 문하생 시절은 꿈으로 가득 찬 시절이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장미빛 환상으로 가득 찰 수도 있는 시기이죠. 그래서 조바심 보다는 난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며 스스로 힘을 주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 자작을 하는 지금은 난 잘할 수 있을 거야라기 보담 난 이런 건 죽어도 못하는구나…라며 한계를 절감하고 꾸역꾸역 내가 잘 하는게 뭘까 라며 고심하게 되는…매우 고통스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하생 시절 조바심도 있긴 있었죠. 93년 첨 자작을 했을 때 너무너무 자작을 하고 싶어서 (문하생으로 있으면 썩는 줄 알았죠) 화실을 뛰쳐 나갔는데 그때 한번 실패하고서 다시 화실에 들어가선 별로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자작의 무서움을 알았기 때문에요.”
-‘야후’ 외에 또다른 작품으로, 월간 ‘웁스’에 연재하다 잡지 폐간으로 중단된 쌈마이 인생을 유쾌하게 그린 ‘발칙한 인생’, 굿데이 연재작으로서 노인개그만화 ‘로망스’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런 발랄한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야후’와는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보일 정도인데요. 스스로 생각하시기에는 어떤 쪽이 더 적성(?)에 맞으신지요. 여러 작품들 중에도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개인적으론 ‘연씨별곡’이나 ‘발칙한인생’, ‘로망스’ 같은 게 제 체질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야후를 했던 이유는 계속 코믹만화만 그리다 보니 웃음의 유형이 비슷해지고 감이 떨어져 좀 다른 장르로 머리를 환기하고 큰 라인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거기의 노하우를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은 미완성인 ‘발칙한 인생’입니다.”
-이제 ‘야후’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좀 지겨운 질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기본적인 거부터… (‘야후’가 무슨 뜻인가 이런 건 안 묻겠습니다.) 다소 먼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작품들은 몇몇이 있지만,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근과거 SF(제 머리 속에서 떠오른 말인데, 이런 장르가 있나요?)는 ‘야후’가 거의 유일한 듯 합니다. 이런 작품을 구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SF를 하고 싶었는데 자꾸 미래의 환경을 가져온다는 게 싫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야 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을 현실에서 풀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거부 반응이 생겼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살아있는 살 냄새를 독자가 느끼게 하려면 현재밖에는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야후는 SF라기보담 폭주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야후’는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 혹은 짐승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야후 1권에서 주인공 김현의 아버지가 무너진 빌딩에서 압사하는 장면이라던가, 삼풍백화점에서 소녀가 압사하는 13권의 장면 등은 임팩트가 아주 강한데요, 저는 어떻게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윤 작가님이 특별히 표현하고자 한 의도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또, 지금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표현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이 드는 부분은 없으신지요.
“자극적인 그림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죠.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전환시켜 주기 위한 설정들이죠. 그것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효과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게 말씀하신 장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이렇게 긴 장편을 처음 하는 관계로 슬럼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서 자주 그림이 허술해 졌다는 것, 그리고 화실 멤버 충원의 관계로 생각만큼 많은 수경대의 활약상을 그려내지 못한 점등이 아쉽네요.”
-야후 전권을 통해서 ‘아버지’란 존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윤 작가님께서는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아 보입니다. 저는 특히 신무학이 수경대에 들어가는 날 집 밖에서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던 신무학의 아버지, 그리고 구속된 신무학의 아버지가 호송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키는 신무학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현의 아버지, 신무학의 아버지, 두 사람의 또 다른 아버지인 최윤수를 통해서 윤작가님께서 말하고 싶은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지요?
“저에겐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가 계시죠. 그 아버지도 또 다른 아버지를 갖고 있구요. 그럼 나 역시도 언젠간 아버지의 자리가 오지 않을까.(안 올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내가 지금 떼쓰고 비난하는 저 사람이 내 모습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항은 젊음의 특권이지만 그 결과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한 자신에게 고스란히 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버지는 배타적 존재가 아닌 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최윤수 대장의 부성애적 모습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흔히 지시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주로 써온 방법이었고 그것을 김현이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해 자기이입시켰다고 설정했습니다. 최윤수의 부성애는 조건적이고 이기적이며 잔인하죠. 그 최윤수의 부성애를 통해 진짜 아버지와 다른 시스템 안에서 왜곡되는 부성애를 그리고 그것에 더욱 분노를 폭발하는 김현을 그리고자 했죠.”
작품에서는 위에서 말한 빌딩압사 장면 등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이야기의 흐름은 급격한 전환을 맞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만화에서 이 정도로 효과적인 임팩트를 주는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훌륭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아버지’라는 존재를 중심에 놓고 작품을 감상하면 또 다른 느낌을 줄 정도로 강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아직 ‘야후’가 완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보면, 역사적인 사실들에서 파헤칠 수 있는 정치, 경제적인 이면보다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통해 나타나는 주인공 김현의 개인적인 분노가 중심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건,사고 외의 역사적 사실들은 단순 배경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듯 한데요, 작품을 하시면서 좀 더 정치, 경제의 이면을 더 파헤쳐서 내용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유혹을 받으셨을 듯도 한데 어떠셨는지…
“일단 지면의 특성을 고려해야 했구요(청소년지). 중요한 건 지금의 독자들이 88올림픽이나 그런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독자들이란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주인공의 내면이나 주인공과 관련된 사건, 사고 위주의 진행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처음 시작도 사회상에 지나치게 몰입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확장은 멈추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유혹을 받았다기보다는 필자가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희망사항이었던 듯 하다.
-장동건 주연의 ‘해안선’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장면에 강상병(장동건 분)이 명동 한복판에서 총검술을 벌이다 대검으로 둘러선 사람을 찌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김현의 친구인 중달이 절망과 좌절 끝에 도심 총격전을 벌이다 죽게 되는데, 모두 조직과 사회의 억압과 개인의 좌절이 증오로 바뀌어 외부로 표출되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김현의 모습도 그렇게 그려지는데요, 개인의 분노와 좌절, 절망과 증오에 대해 지금의 사회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너무 길 것 같아 이 정도로…)”
-야후는 아주 흥미진진한 작품이면서도 역사를 바탕으로 한 어떤 메시지 또한 많다고 보는데,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동시대의 독자들이 특별히 느껴주었으면 하는 면이 있다면…
“비용입니다. 우리가 숱하게 그냥 눈감아주고 눈앞의 즐거움으로 인해 건너뛰는 많은 고민거리들이 해결이 안되면 어느 순간 인생의 몫으로 내면적, 금전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 따라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해야한다라는 게 제 생각이고 거기서 답이 나와야 하고 그 답으로 내일을 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야후’의 주인공 김현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아현동 도시가스 폭파 사고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좌절과 분노를 키워 왔고, 결국은 탈영과 테러(라기에는 좀 약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이 글을 정리하는 와중에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참사가 터졌다. 신병을 비관하여 혼자 죽기보다는 여럿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는 범인의 얘기를 실은 신문기사를 보면서 정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사회는 분명 개인의 분노와 좌절, 절망과 증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4000만 개의 시한폭탄을 안은 채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언제 어디서 폭발하여 서로의 목숨을 앗아갈 지 모르는 그런 폭탄을. 윤태호 작가의 짧은 대답이 기자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감히 천기누설을 꾀하자면, 김현은 어떻게 되나요? 비극의 테러리스트로 종말을 맞이하는지… (대답 못 들을 가능성이 100%라고 생각하지만 힌트라도.)
“…”
이 질문에 답은 있다. 그러나 생략한다. 사실 이 질문을 하면서, 흔히 그렇듯이 ‘책이 나오면 알게 될 겁니다’ 같은 일반적인 답변을 기대했는데, 답이 턱~ 쓰여 있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야후’ 연재를 보고 계신 분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결말을 아는 것은 김새는 일이다. 그냥 나중에 책을 직접 보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약간 가벼운 질문들을 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전반부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신무학의 애인이었던 고예리라던가, 신무학에게 실전격투기를 가르쳤던 4인방이라던가… (좀 어이없을지는 몰라도 그 4인방이 중달과 함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역할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또 12권에서 김현과 스파링을 하면서 ‘기계가 아니더라도 이겨내지는 못할 현실은 없다’란 말을 하던 선배는 어떤지요. 김현 검거 과정에서 한 번 더 나타날 듯도 한데. (별로 안 가벼운가요?)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곧 고예리는 나올 것이구요 격투 4인방은 어떻게 쓸지 고심하고 있습니다.(일깨워 주셔서 감사!)”
-야후 9권을 보면 1988년 겨울에 수경대 추락사고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1990년 가을에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이 2년 가까이 별 마무리 없이 진행되리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인가요?
“한마디로 지지부진 했다고 보시면……안될까요?”
-15권은 김현이 도주하면서 ‘육해공이 다 터졌으니 이제는 썩어빠진 청계천 지하다’라고 말하며 폭탄 소동을 일으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즘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계획이 말하자면, 김현식의 복원(?)계획인 듯 한데요. 청계천 복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변상인들이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죠. 그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겁니다.”
만화 속의 이야기들을 현실로 끄집어 내는 것은 굉장히 흥미 있는 일이다. (혼자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직접 얼굴 보고 인터뷰를 했더라면 더 재미있게 흘러갈 수 있었을 질문인데…하며 아쉬워했단 얘기.
-작품 ‘야후’는 검색엔진 ‘야후’와 상표권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진행이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여러 언론이나 웹진들에서 말도 안 된다는 기사들로 힘을 실어주셔서 인지 아직까진 추가 항의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상업적인 만화포털이나, 개인사이트를 통해 만화를 유통시키려는 움직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윤 작가님께서는 ‘SPP2001 만화 컨퍼런스 : 만화출판 활성화를 위한 만화인 토론회’에서, 온라인상에서의 상업적인 만화유통이, 온라인회사와 출판사간의 거래관계에서 작가를 소외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언급하신 문제 외에도 인터넷이란 매체가 만화매체로서 가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긍정적인 면으로는 독자들이 자기집 안방에 만화방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만화를 집에서 간단한 클릭만으로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지면으로만 한정되었던 만화가 다양한 표현으로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부정적인 면은 별로 생각이 안 나는데 일단 책을 구하고 고르는 수고로움이 많이 떨어져 독자들이 작품을 읽을 때 쉽게 중간에 던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걱정^^도 해봅니다만 인터넷 만화가 일상화되는 때가 오면 그런 걱정도 끝나겠죠.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단지 산업적 측면에서 인터넷 만화가 활성화 되려면 결재시스템 보안의 문제나 미성년자의 결재방식과 관련한 고민들, 그리고 인터넷 환경에 맞춘 좋은 작품이 선결과제라 생각됩니다.”
-언론보도에서 김준범 작가님 등과 agami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듯 한데요, 어느 정도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아가미 멤버 8인중 5명이 사이트 오픈을 위해 업체와 계약을 한 상태구요. 그곳에 올릴 작품들을 준비중에 있고 이번 달 중으로 사이트디자인이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3월 중이면 가시적인 성과가 보여질 것 같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기획할 때는 ‘인터넷과 만화’라는 주제를 좀 더 심도 있게 가져가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메일 인터뷰로 형식이 바뀌면서, 이런 주제를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상호간의 토론이 아닌 문답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서 주되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간단한 문답이었지만, 인터넷이 만화매체로서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이 별로 생각이 안 난다는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대중음악 생산자들보다 더 많은 피해를 인터넷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 만화작가라는 생각을 했기에 좀 더 비판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 환경에 맞춘 좋은 작품들은 어느 정도 나오고 있다고 보여지지만, 결재시스템 등의 문제만 해결되면 만화매체로서의 인터넷이 산업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까 하는 부분은 다소 고민이 된다.
아가미 프로젝트는 8인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인터넷 만화 사이트를 개설한다는 내용이다. 출판사의 사정(잡지 폐간 등)에 의해서 작품이 중단이 되고, 내용상의 영향을 받는 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라고 해서 여타 사정에 의한 사이트의 폐쇄와 업데이트 일정에 의한 작품의 내용과 품질의 변동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만화산업적인 측면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이코믹 인터뷰에서 윤 작가님은 ”재미’라는 것은 단순히 웃기는 코믹만화의 재미도 있지만, 아주 심각하고, 감동적인 만화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며, 그 다른 재미들을 모두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른 재미를 위해 구상중인 작품이 있으신지요, 또 작품을 구상하거나 진행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다른 측면이 있다면요.
“재미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최근 제가 몰두해 있는 재미는 인간승리~!!!드라마입니다. 역경을 헤치고 건강하게 일어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죠. 장르는 상관없고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인간들을 그리는 만화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 사건과 사건의 연결, 그것이 얼마나 당위를 가지며 연결되어 있는가? 또 그렇게 연결된 사건들은 작품전체의 진행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각각의 사건들이 작품전체 테마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질문이지만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만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십시오. 좋은 만화를 그리는 좋은 작가가 살아남는 근거가 됩니다.”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특정한 기간마다 마감의 압박과 마감 후의 휴식이 반복되는 그 삶에 틈을 내어 끼어들기에는 내공이 약했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이메일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만, 초보 인터뷰어의 정리되지 않은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신 정성이 무척 고마왔다. 언젠가는 직접 만나서 이번 이메일 인터뷰의 아쉬움을 떨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by 뗏목지기 (2003. 03. 02)
from 오마이뉴스
덧붙임 (2005. 04. 13)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입니다. 많은 작가분들과 인터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전업도 아니었고… 시작은 해 놓고 계속 하진 못했었네요.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참 많이 듭니다. 일단 ‘야후’는 완간되었지만, 아가미 프로젝트는 사실상 정체상태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에 김준범 작가님의 엑스타투 프로젝트의 좌절에서도 보았지만… 우리나라 만화시장은 대여점/대본소와 스포츠신문/포털사이트가 양축을 이루면서 작가와 독자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에 보아도… 빛은 잘 보이지가 않네요. 한국의 만화시장이 하루빨리 작가와 독자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