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 썰.
0. A사
대학 재학중에 대구에서 선배들과 함께 만든 PC통신 관련 회사에서(난 지분은 없었음) 서버/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도 가기 전이었는데 무슨 자신감에 넘쳐 학교도 그만두고 이걸 했는지 몰겠지만. 나중엔 주력 업종이 피씨방 창업 컨설팅 쪽으로 바뀌었는데 덕분에 피씨 조립, 랜선 포설, 라우터 설정은 미친 듯이 해봤던 것 같다. 애초 계획이었던 병역 특례는 결과적으로 물 건너가고 늦은 나이에 군대 끌려가면서 여기는 쫑. 나름 배운 건 있지만 지금은 이력서에도 쓰지 않는 흑역사 중 하나.
1. B사
제대하고 A사 같이 했던 선배를 만나 서울 올라와서 다니게 된 회사. 딱 1년 다녔는데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소규모 IDC 운영, 서버/네트워크/VoIP 장비 운용, 기술영업, 임금체불(1년동안 6개월치 받음) 등등. 여기서도 랜선 찝고 깔고는 진짜 많이 한 듯. 고객측 장비 설치하러 가서 천장 기면서 랜선 넘기고 막… 퇴사하고 나서 임금체불 건은 직원들 모으고 좋은 변호사님 만나 반환 절차 진행해서 2년 걸려 다 받아냈다. 성공 보수 등 비용은 들었지만. 그 때 근로기준법이랑 판례 사례 열심히 봤는데. 뭐 지금은 다 까먹었음. 여기서 참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는데 어느덧 지금은 연락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 C사, D사
B사에서 같이 일했던 영업팀장님과 몇몇이 함께 입사했던 인터넷 전화 관련 회사. 나중에 분사 비슷하게 되서 D사로 넘어감. 하던 일은 계속 서버/네트워크 엔지니어였지만, 기술영업 지원, 고객측 장비 설치, 트러블슈팅에다, 장비 제조를 겸하는 회사여서 납품 기일 급할 땐 QC에 포장에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했던 듯. 아, 영업조직 교육도 다녔다. 생각해보면 다단계였던 거 같은데 딱 봐도 정리해고 당했을 거 같은ㅠㅠ IT 비전공 50대 아저씨들 한 100명 앞에서 인터넷 전화의 기술적 특성 어쩌고 썰 풀고 다녔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미쳤네 미쳤어. 여기도 결국은 임금 체불 때문에 그만둠. B사에서의 경험 때문에 오래 안 기다리고.
C사는 경기 광주 오포에 있던 덩그러니 단독 건물이라 특이한 경험도 많이 했던 듯(D사는 분당). 건물 앞 컨테이너에 식당이 있고 정규직(!) 조리사 분도 있었다. 조리사가 직원들을 종업원처럼 부려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친한 직원들한테 누룽지나 삶은 달걀 같은 주전부리도 챙겨주고 그랬음. 눈 많이 온 날 분당에서 오포 넘어오는 고개를 버스가 못 올라가는 바람에 걸어서 출근한 적도 있고. 퇴근 시간 잘못 맞추면 외대 용인캠 학생들이 버스에 가득해서 몇 대씩 그냥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
이 즈음엔 지방 출장도 많아서 변변한 내비도 없던 시절에 지도책 들고 다 똑같이 생긴 공단 건물들 사이를 헤매기도 하고, 장비 하나 설치하러 제주도 당일치기로 막 갔다오고 그랬었지. 글고 보니 여기 다니면서 사이버 대학 편입해서 마치기도 했구나.
군대 가기 전 A사를 빼면 B~D사까지가 4년 안쪽의 기간동안 일어난 일. 그 뒤로는 그나마 한 회사에 오래 있었던 편인 듯.
3. E, F사
여기도 E사로 입사했다가 영업 양수도로 F사로 넘어간 케이스라 묶어서 씀. 여기도 D사에서 먼저 나간 후배가 연락 줘서 입사한 케이스인데 생각해보니 늘 인맥 타고 이직했던 것 같아 민망하네;;
암튼 여기도 4년 남짓한 기간동안 많은 걸 봤다. 80명에서 200명까지 직원이 늘어나는 성장 과정, 중견 기업 벤처 자회사에서 코스닥 상장까지, 거액의 지분을 팔고 엑싯한 CEO와, 뒤이어 들어온 작전 세력이 회사를 망가뜨리고 상장폐지에 이르고, 일부 돈 되는 사업 부문이 또다른 중견기업 계열사로 양수도되는 것까지…
개인적으로는 엔지니어로써 전자금융 관련 아키텍처를 네트워크/서버/스토리지까지 구축 운영, 법제도상 필요한 보안 감사 수검까지, 커리어 상으로는 제일 많은 것을 경험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여기는 권고사직으로 나왔는데, 어떻게든 버텼으면 모회사가 든든한 편이라 그럭저럭 잘 지냈을 것 같아서 가끔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4. G사
직장 경력 중 가장 오래(5년) 있었던 곳. 그 전 회사에 비해 규모도 무지 작았고 커리어와 관련해 경험할 수 있는 폭도 작긴 했지만, 대기업과 같이하는 서비스 구축, 운영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던 곳이다.
여기선 소셜 미디어, 만화 등의 서브컬쳐에 대해 취향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늘 즐거웠다. 상수동 사무실 근처에 널린 맛집을 찾아다니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산책하고 햇살 맑은 날엔 한강공원이서 도시락을 먹거나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던 그런 날들.
개인적으로는 IT 관련 컨퍼런스나 교육도 많이 참석할 수 있었고, 블로깅이나 슬로우뉴스 참여 등 내 삶에 있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못 볼 꼴도 많이 봤지만 그래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다시 돌아갈 순 없겠지만.
5. H사
지금 다니는 곳. 끝. 여기는 언젠가 나중에ㅋ
이어서 이력서와 인터뷰 썰. 판춘문예도 아니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1.
제대하고 일하기 시작한 B사에서 흔히 병역특례라 부르는 산업기능요원을 채용할 때의 일. 어쩌다보니 나도 이력서 검토를 하게 되었는데 희망연봉 란을 아주 특이하기 채운 ㅁ군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다.
“회사에서 잘 수 있으면 월급을 안 받아도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회사 근처 고시원 방값만 받으면 됩니다.”
그 외의 이력이나 자소서는 특별할 게 없었다. (대학 다니다 병특으로 입사하려는데 뭐 있을 게 없지. 요즘처럼 너도나도 스펙 막 쌓는 시절도 아니었고.) 그래도 이 희망연봉 문구가 너무 특이해서 어떤 인간인지 얼굴이라도 보자 해서 면접에 불렀고 결국 합격시켰다.
진짜 월급 안 줘도 되냐고 계속 물었는데 정색하고 자기는 일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도 나고. 아무튼 이 친구는 성실하게 능력을 발휘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임금체불 때문에 고생도 하고 산업기능요원이라 중간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애먹긴 했지만. 그리고 나중에 내가 옮긴 C사에도 불러서 함께 일했었다는 이야기.
2.
C사에 있다 분사 비슷하게 D사로 넘어간 뒤에 팀원을 뽑을 때의 일. 이 때는 어쩌다보니 팀장 직책을 가지게 되어서 이력서를 한참 검토하는데 너무 특이한 사진이 붙은 ㅎ군의 이력서가 있었다. 음 뭐라 설명하기가 힘든데 얼굴의
각도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도저히 이력서에 붙일만한 사진은 아니었다. 게다가 웃겼다!
역시나 이력서의 다른 부분은 특별할 게 없었(거나 사진에 압도되어 묻혔)고 이력서에 이런 사진 붙이는 인간 얼굴이나 보자 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 친구는 면접 때도 은갈치 정장을 입고 와 모두를 뜨악하게 하는데… 결국 합격시켰다. 생각해보니 내 취향이 이상한건가. ㅡ.,ㅡ;;
아무튼 이 친구도 정말 성실하고 능력껏 일해줬다. 나중에는 나보다 먼저 E사로 이직한 다음 나를 불러줬다. 지금 ㅎ군은 해외에서 통신 사업체를 차려 국제 비즈니스맨(!)이 되었고, 나와 E사에 와서 만난 J군과 함께 셋이서 서로의 연애와 결혼과 육아를 지켜보며 지금도 가끔씩 만나곤 한다는 그런 이야기.
3.
그 뒤로는 위의 ㅁ군, ㅎ군같은 임팩트 있는 이력서는 본 적이 없다. 사실 규모도 작은 회사에 신입 채용이니까 저런 이력서가 면접으로 이어졌지, 큰 회사에 경력직이면 어림도 없었을 듯.
지금 있는 회사에서도 어쩌다보니 프리랜서 시스템 엔지니어 고용을 위해 이력서 검토와 면접을 보곤 한다. 보통 10년 이상 경력자를 뽑다 보니 사실 자소서는 안 본다. 볼 필요가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이력과 경력 기술서인데 경력이 길어도 이걸 못 쓰는 분들이 참 많다. 아무리 읽어 봐도 자기가 뭘 잘한다는 건지 핵심 역량이 뭔지를 잘 모르게 써 놨다. (사실 나도 정기적으로 내 이력서 수정하면서, 남이 이거 봐서 내가 뭘 잘하는 알까 이런 생각 들긴 하지만.)
이력서 검토를 통과해서 면접을 보게 되면 딱 두 가지 경력만큼 아는지, 적극적인 애티튜드가 있는지만 짚는데, 이렇게 뽑아도 며칠만에 후회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내가 사람의 내면을 몇 장의 이력서와 몇십분의 면접으로 알만큼 능력이 되진 않아서 그렇다는 그런 이야기.
4.
뭐 더 쓸게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도 안 나고 점점 재미가 없어지므로 대충 마무리하고 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