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때 MS-DOS로 구동되는 IBM 호환 PC에서 GW베이직으로 처음 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게 숫자 야구 게임이었다. 캐릭터가 나와서 던지고 받는 그런 거 아니고… 세 자리 숫자 맞추기 게임이었다. 기본 로직은 단순한데 화면 출력에 엄청 공들여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는 컴퓨터 동아리를 하면서 C 언어에 입문했다. 그 당시 베개만한 책으로 유명했던 “터보C 정복”을 독파하고 허큘리스와 VGA의 그래픽 메모리에 직접 접근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그랬었다.
어쨌거나 프로그래밍은 참 재미있었고 그때만해도 나는 내가 장래에 개발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거짓말처럼 개발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다른 테크 트리를 타고 지금은 평범한 서버 어드민이 되어 있다. 쉘 스크립트 정도 만들고 PHP나 자바 소스 정도는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업무상 개발 경험은 없는 뭐 딱 그런 정도. 한 마디로 많이 게을렀다.
최근 들어 파이썬을 공부하고 있다. 루비, PHP, 자바 등을 고려하다가 지금 하는 업무에 적용하기에 파이썬이 좋겠다 싶어서였다. 업무상 만든 쉘 스크립트를 포팅하면서 실습하기가 좋다. 최근에 직장 동료 한 분이 다양한 예제와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재미있다. 처음 GW베이직을 공부하고 터보C 책을 파고들 때만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는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언어만큼 재미있는 게 또 환경이었다. Github은 오픈소스 어플리케이션 다운 받을 때나 써봤는데, 계정 만들어서 테스트 서버랑 연동해서 이것저것 해보니 우와 이런 신세계가 있구나 싶더라. 서버 터미널에서 vi만 쓰다가 IDE를 써보니 그것도 무척 편리했다. 이클립스에 pydev도 좋고 Github에서 만든 Atom 에디터도 최고다.
파이썬 말고도 이것저것 해 보는 게 다 재미있다. Vagrant, Chef, Docker, AWS(EC2 외에 Beanstalk 같은 자동화 관련 서비스) 등등 이것저것 깔았다 지웠다 하고 있다. 음… 그런데 IT 밥 먹고 산 지 10년이 넘은 인간이 남들 다 아는 걸 이제 알았다고 흥분하고 있으니 살짝 부끄럽기는 하네. 어흑.
하지만 천재와 존잘들이 넘쳐나는 이 업계에서 고용 불안에 은퇴 나이도 얼마 안 남은 나같은 평범한 엔지니어가 이런 재미라도 못 느끼면 너무 슬프지 않나.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삶은 계속되고 배움은 끝이 없으니 뭐라도 해 보는 거지.
…
어우씨, 깜짝이야. 뭐 이렇게 길게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