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폭주하는 비행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얄궂게도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노인 친화적’인 곳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일단 호칭 문제부터가 그렇다. 노인들은 언제부턴가 ‘어르신’의 위치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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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갖는 상대적 비중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극존칭이지만, 실제로는 별볼일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호칭이 바로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요금을 안 내고 승차하는 어르신, 젊은이들이 자리에서 비켜주기를 바라며 헛기침을 하는 어르신, 담배 피우는 젊은 여성과 시비가 붙은 어르신 등, 이 목록은 끝이 없다.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특히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뜻에 대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언제부턴가 ‘노인’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있는 이 단어, 너무 막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부산시 복지건강국 고령화대책과는 ‘부산 어르신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제주도 노인장애인복지과는 ‘제주도 어르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서울시에도 ‘어르신 복지’라는 사이트가 있다. 사이트 메뉴를 보면 어르신 복지사업, 어르신 복지정책, 어르신 지원사업, 어르신 복지시설… 게슈탈트 붕괴가 올 지경이다. (주: ‘게슈탈트 붕괴’라는 개념은 실존하는 것은 아님. 알고 싶으면 리그베다 위키의 항목으로) 이렇게 넘치듯이 극존칭으로 쓰이는 이 단어가 오히려 ‘별볼일없는 노인들’에 대한 호칭이 되고 있다는 것도 동의가 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찬조 연설에 나섰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의 찬조 연설을 보고 감동한 젊은이들의 반응은 사실 대부분 비슷했다. 그 나이대의 노인이 이성적인 태도로 합리적인 말을 조곤조곤 한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대중교통에서 맞닥뜨리는 그 막무가내 어르신과 다른 모습을 봤다고 흥분했다. 드디어 우리가 존경할 수 있을 만한 어른을 만났다면서.
합리적인 노인? 실존하는 건가요?
나는 이 대목에서 현웃이 터졌다. “그 나이대의 노인이 이성적인 태도로 합리적인 말을 조곤조곤 한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은 것”이라니. 아 정말 그렇구나. 나이 든 사람이 꼰대질하면서 버럭버럭 우기지 않고 합리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인 것이다!
이미 학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이 원로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어르신과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에서 부대낄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들의 책을 손에 든 젊은이들은 출퇴근 시간의 번잡함을 견디며, 어르신과 함께 고단한 하루를 여닫고 있다. 어떤 노인의 책을 읽으며, 다른 노인을 가까스로 견디는 젊은이들은, 언제 어디서 불길이 치솟을지 모르는 지하철을 탄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점은,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점이다. 이 글에 따르면 멀쩡하던 사람도 노인이 되어 범죄자가 되는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한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은 젊은 우리도, 그 아래 세대도 그런 ‘어르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잘 늙자
세상과 개개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그렇게 늙지 않을 수 있을까. 고교 동창들과 이 글을 돌려보면서 ‘우리 잘 늙자’며 다짐했다. 어떤 친구가 ‘난 안 늙을 건데?’라고 농담을 했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더 빨리 꼰대가 되더란 말이지. 우리 다 같이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