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명가의 술』 귀향한 선배에게
명가의 술, Akira oze(글/그림), 서울문화사
선배님께.
얼굴 안 본지가 한참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전에 한 번 만나서 술이라도 한 잔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네요. 사실 얘기 듣고 한 번 연락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생활에 밀리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점점 젊은이들이 떠나가는 농가로 돌아간 형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고 믿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유기농업 공동체라는 쉽지 않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애쓸 선배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얼마 전에 ‘명가의 술’이란 일본만화를 봤어요. 실은 이걸 보다가 선배 생각이 났거든요.
더 훌륭한, 더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장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술 이야기를 뛰어넘는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더군요. 특히 원료가 되는 ‘좋은 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젊은 층의 이농문제, 유기농법의 실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 층들은 점점 농촌을 떠나고, 일손이 모자라지만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노년층은 기계와 농약 방제를 통해 쉽게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런 현실을 이용하여 수익을 얻는 농협과 농약회사의 유착관계, 그러면서 점점 더 멀어지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농약으로 범벅이 된 농산물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현실은 농사를 짓는 국가라면 어디나 비슷해 보이네요.
농가들의 무관심과 농약회사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업 재배농가들의 모임을 만들어가고, 많은 어려움에도 주말농장 형태의 유기농업 농장을 꾸려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배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한 등장인물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유기농업이 세계를 석권할 것이다’ 땅과 인간을 죽이는 농약의 제조기술이 농업기술의 혁신으로 인식되었던 시대로부터, 삶의 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기농업의 확산으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형도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더운 여름이 지나 수확의 계절이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면 우리 언제 만나 따뜻하게 데운 청주 한 잔 하도록 해요. 참, 좋은 청주는 데우지 않아도 맛이 있다고 하더군요.
원료가 되는 쌀을 많이 깎아낼수록 좋은 술이 된다고 합니다. 땀 흘려 일구어낸 쌀을 많이 깎아내야만 좋은 쌀이 된다는 모순을 안고 사는 것이 술쟁이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쌀과 자연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참 맞는 얘긴 거 같습니다.
거, 머, 좋은 청주는 제가 구해서 가도록 하죠. 핫핫…
늘 건강하세요.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2002년 5월 2일 새벽에
못난 후배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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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에는 정말 술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체질적으로(집에서는 유전이랜다. ^^;) 술에 강한데다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주변의 권유도 그렇고 나도 즐기다보니 엄청나게 퍼마셨었었다. 물론 지금은 나이도 나이고 ㅡㅡ; 체질도 조금은 변해서 그렇게까지 먹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술에 대한 에피소드는 한두 개 쯤은 있을 거다. 첨에는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나를 마셔버려서 정신은 이미 휴가 나가 버리고 기계적인 음주와 떠벌림만 남게 되고… 가끔은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어… 글고 보니 나도 자동차 백미러는 꽤나 깨고 다닌 거 같은데. ^^;;
양주, 와인, 맥주, 소주, 동동주 등 누구나 취향은 있겠지만, 별로 가리는 편은 아니다. 각각의 만드는 법도 틀리고, 알콜 도수도, 맛도, 어울리는 안주도 틀린 갖가지 술이 있지만 기분 좋게 취하는 정도라면야, 술이란 가끔 인생을 꽤나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거 같다.
가끔씩 들르는 꼬치구이 전문점에 가면 데운 청주를 잔으로 판다. 겨울에 오뎅 국물을 곁들여서 마시는 그 맛은 정말 일품이다. 체인점이라서 웬만한 데는 다 있는데, 얼마 전에 회사 근처에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청주를 일본 술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져 일본에 전해진 우리 전통주라고 한다.)
청주라는 말 대신에, 정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정종은 일본강점기에 판매되었던 청주의 상표이다. 그리고 데워서 먹는 것은 숙취의 원인인 쌀눈의 성분을 날려버리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쌀의 50%까지 깍아내어 원료로 사용한 ‘설화’처럼 차게 먹어도 좋은 청주도 나오고 있다. ([酒 이야기]에서 일부 발췌)
Written by 뗏목지기 (200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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