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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안고 돌아온 여행

밀크 코리아 2016년 07월호 DADDY COOL 코너에 실은 글.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무척 무모한 일이었다. 돌 지나고 몇 개월 안 된 아이와 비행기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주변에서도 말리는 사람이 반, 그래도 해보라는 사람이 반이었다. 고민되긴 했지만, 더 먼 나라를 더 어린아이와 함께 둘이서 다녀온 어느 엄마의 블로그를 읽다 보니 못할 게 뭐냐 싶었다. 어른 둘이 애 하나도 못 챙기겠어? 이렇게 OO이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c)미디어블링

유모차는 필수품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집을 나서기만 해도 짐이 한 가득이다. 기저귀와 분유, 젖병,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은 기본이고, 손수건에 여벌 옷에 놀이감까지 한 짐 챙기고 유모차까지 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1박 정도의 짧은 여행에는 오히려 내 짐보다 아이 짐이 더 많은 사태가 벌어진다. 이러다가 분유와 이유식을 떼고 기저귀를 떼면 짐이 확 줄어든다. 유모차까지 안 챙겨도 되는 날이 오면 정말 짐이 없다 싶을 정도로 줄어든다. 이 단계까지가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일본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당시에 OO이는 이유식은 떼었지만, 기저귀는 아직 하고 있었다. 기저귀가 여행 가방의 4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느낌인 건 어쩔 수 없었고, 접이식이긴 해도 유모차를 챙기는 것도 일이었다. 아장아장 곧잘 걷는 데다 걷기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던 시기였기에 안 챙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이내 관두었다. 결국 그 유모차는 여행 기간 내내 나와 아내, 그리고 OO이의 든든한 이웃(?)이 되어 주었고, 여행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유모차뿐 아니라 의자, 침대, 카트, 옷/가방 걸이 등 다양한 역할을 해 주었다.

생각처럼 되는 법이 없는 여행

여행이란 게 사실 예정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고 고민하고 고민해서 일정을 잡아도 해 보면 생각과 다를 때가 많다. 미리 항공사에 베시넷(요람)까지 신청했는데 OO이는 거기 들어갈 생각도 안 하고 비행시간 내내 한 잠도 안 잤다. 그나마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그러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유모차에 태우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공항에서 하카타 역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잤다. 일본까지 왔는데 왜 경치 구경을 못 하니… 그나마 유모차 챙겨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처음 한 순간이긴 했다.

3박 4일의 일정도 되돌아보니 참 신기하게 잡았던 것 같다. 규슈 지역을 간다고만 생각하고 할 일을 이것저것 골랐다. 료칸에 가서 온천도 하자, 나가사키 가서 짬뽕도 먹자, 아이가 있어서 시간 맞추기 힘드니 패키지는 피하자 등등해서 일정을 잡았더니 매일 숙소가 다르고 두세 시간가량 걸리는 기차를 세 번 타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물론 OO이는 예나 지금이나 기차를 아주 좋아하는데다 나름 먹거리와 놀 거리를 잘 챙겨서 큰 무리는 없었다.

기차보다는 나가사키 노면 전철이 좀 힘들었었다. 도로 한가운데에 타는 곳이 있는데 횡단보도가 없었다. 덕분에 유모차에서 아이를 내려 안고 유모차는 접어들고 육교 계단을 오르고, 다시 유모차를 펴서 아이를 태우고 간 다음, 다시 안고 접고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펴고 태우고 난리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전철에서 내린 다음엔 또 안고 펴고 계단을 오르고… (그만해)

고생하긴 했지만

기억이 미화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맘때의 OO이는 그럭저럭 밤에 잠도 잘 자고 때 되면 잘 먹고 잘 싸고 그랬던 것 같다. 어지간한 경우에도 입에 먹을 것만 넣어주면 얌전해지는 편이었다. 사실 여행하기에 곤란했던 건 먹고 자는 문제가 아니라 걷는 문제였다. 걷기에 의욕은 불타는데 몸은 잘 안 따라주고 조금만 걸으면 지치는 저질 체력인 딱 그 시기였기 때문이다. 유모차 타자면 걷자고 하고, 걷겠대서 숙소에 유모차 두고 나왔는데 금방
안아 달라는 식이다. 에스컬레이터 타기에 재미를 붙이는 바람에 쇼핑몰 1층에서 5층까지 몇 번을 왕복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행 내내 아내와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자유 여행이니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었고 아이가 즐거워했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멋진 동영상을 찍고서 OO이에게 보여줬다가 터치 세 번으로 싹 지운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추억 속에 남아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진과 동영상이 많이 남아 있어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음, 뭐, 물론 그 당시에는 애한테 짜증을 조금, 아주아주아주 조금 낸 것 같긴 하지만 슬쩍 넘어가야겠다.

기억은 없어도 따뜻함은 남아

사실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 이런 얘기도 들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기억을 못 한다고. 괜히 고생만 하고 돈만 들고 아이한테 남는 건 별로 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아이 위주로 움직이느라 어른한테도 남는 게 없단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아주 어릴 때는 가족과 놀러 다닌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분명히 여기저기 다니기는 했을 텐데 기억에는 없는 그런 사실들이다.

하지만 기억에 없다고 해서 남은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사진 때문이다. 본가의 사진첩 속에는 아직도 젊은 날의 부모님과 어린 날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다. 흐릿한 색감에 풍경은 황량해 보여도 따뜻한 느낌이 남아 있는 어느 유원지라든지, 굉장히 흔한 구도지만 가족이 함께 있어 의미 있는 어느 사찰의 대웅전 앞이라든가. 기억은 없어도 나와 가족은 분명 그때 그곳에 있었다. 여행에서 사진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쓸모가 있는 듯하다.

OO이도 그때의 여행을 온전히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 따뜻함과 유쾌함은 마음 속에 저장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사진과 동영상은 아빠 엄마의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공간에 위치정보와 함께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테니, 언제가 그것들을 함께 보며 조금 더 젊은 엄마 아빠의 모습과 스스로의 어린 모습을 다시 기억에 담게 해줘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때는 사진보다는 두 눈 속에 더 많은 것을 담아 올 수 있지 않을까.

뗏목지기

일, 가족, 사회, 만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잡다한 인생. 기본은 남자 사람. 아이폰6와 맥북에어를 아끼는 시스템 엔지니어, 슬로우뉴스(slownews.kr) 편집위원, OO 아빠. 뗏목지기라는 닉네임 뒤에서 살고자 했으나 페이스북에 의해 실밍아웃당한 뒤 자포자기함.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