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풀 님의 ‘친절 바이러스’란 글을 읽었다. 그 글 끝에서 들풀 님은 자신을 도와준 아이에게 남을 배려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알게 가르친 그 부모와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썼다. 요청받지 않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2.
얼마전 에버랜드 [마다가스카 LIVE!]를 보러 가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선착순 100명까지 2인당 마다가스카 소시지를 한 통씩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늦어서 못 받고 들어왔는데 우리 앞에 앉은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보이는 여자애가 우리 쪽을 돌아보며 “저, 이 소시지 얘들(아이와 아이 사촌)한테 줘도 돼요?”하고 물었다.
바로 받았는지 거절하다 받았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무튼 그 아이는 우리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소시지를 하나하나 나눠줬다. 우리도 고맙다며 과자였나 사탕인가를 (역시 그 아이 부모에게 줘도 되는지 물어보고) 줬는데, 고맙단 인사도 어찌나 잘하는지, 뭐랄까 참 아이가 티 없이 맑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그 아이와 얘기 나누는 엄마의 말투와 태도에서 인상적일 정도로 경청, 배려, 존중 같은 게 보였다. 역시 아이의 모습은 상당 부분 부모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3.
몇 년 전 친구들과 1박 2일 가족 모임을 갔을 때 일이다. 숙소 근처 마트에 가서 친구와 장을 보고 계산대에서 줄을 서면서 통로를 막지 않으려고 앞사람과 살짝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그 틈으로 할머니 한 분이 카트를 들이밀었다. 나는 당연히 그 할머니에게 우리가 먼저라고 얘기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친구가 할머니가 카트 미는 걸 도와주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이구, 어르신~ 맛있는 거 많이 사셨네요. 들고 가시려면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하는 거였다. 그제야 아차 했다. 그 할머니가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었고, 우리도 시간이 그렇게 급하지 않은 데다, 우리 뒤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할머니를 내 뒤로 보내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아, 나란 사람 참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싶었다.
4.
나는 내 아이가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도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친절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지 싶다. 하지만 많은 순간에서 나는 여유를 잃곤 한다. 배려보다는 나를 앞세우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드러난다.
사람이란 정말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도 아이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도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좋은 기운이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조금 더 달라져보자, 마음 먹게 된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글과 사람과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