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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question and exclamation mark of jigsaw puzzle pieces", Horia Varlan (CC BY 2.0)

직업을 설명한다는 것에 관하여

1. 노후 준비에 관하여

10년 가까이 가족모임을 가지는 고등학교 동창 그룹이 하나 있다. 나 포함 여섯 명이다. 여섯 가족이 다 모이는 경우도 있고 시간 되는 대로 몇 가족씩 모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주말엔 세 가족이 모였다.

주된 대화의 소재는 ‘노후 준비’였다. (…) 요즘 캠핑에 재미를 붙인 한 명은 캠핑장을 운영하겠다며 지역과 땅 시세 같은 걸 알아보곤 한단다. 여행을 좋아하는 하나는 관광 통역사를 하면 어떨까 싶어 방통대 편입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A question and exclamation mark of jigsaw puzzle pieces", Horia Varlan (CC BY 2.0)
“A question and exclamation mark of jigsaw puzzle pieces”, Horia Varlan (CC BY 2.0)

2. 직업을 설명한다는 것-1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것은 보통 남에게 설명하기가 꽤 힘들다. 10년 이상 이 일을 해오고 있으니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설명하는 거 자체가 일이다. 그래서 보통은 ‘IT쪽에서 일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게 된다. 부모님도 아들 직업을 남에게 설명하기가 참 힘들 거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설명하기 쉬운 직업(교사, 의사, 변호사, 기자 등등)을 가지거나, 설명하기 쉬운 회사(삼성이나 엘지나 현대나)에 다니거나. 후자의 경우 직업이 아니라 직장을 설명하는 것 뿐이지만, 대체로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게 사실이다.

만약 내가 대기업 혹은 대기업 계열에서 시스템 엔지니어 일을 했다면 설명이 아주 쉬웠을 것이다. 시스템 엔지니어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3. 직업을 설명한다는 것-2

맨처음 노후 준비 얘기로 돌아가서, 캠핑장 운영이나 관광 통역사는 설명하기가 쉽다. 대화에 끼어들기도 쉽다. 그런데 내 경우는 지금 직업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하고 싶은 일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은 ‘슬로우뉴스의 전업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노후 준비’와는 좀 다른 개념이지만) 그것도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기자로서, 편집위원으로서 등 여러 역할을 그 안에서 하고 싶다. 그런데 이걸 설명하려면 얘기가 엄청 길어진다는 게 함정…

게다가 캠핑장 주인이 되기 위해 땅을 알아본다거나, 관광 통역사가 되기 위해 방통대를 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굉장히 구체적이기도 하고 알기가 쉽다. 그런데 나는 글을 열심히 쓰고, 편집을 열심히 하고, 뉴미디어의 트렌드에 대해 공부하고 이런 게 남들에게는 좀 뜬금없이 보이기도 할 거다. (그래서 말을 잘 안 하게 됨…) 아마 아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

"reset_21jan2009_0160", patrick h. lauke (CC BY-NC-ND 2.0)
“reset_21jan2009_0160”, patrick h. lauke (CC BY-NC-ND 2.0)

4. 문제는 그게 아닌데

사실 문제는 얼마나 설명하기 쉬운 직업을 가지느냐(혹은 설명하기 쉬운 직장에 다니느냐)가 아니다. 아직도 내게 확신이 부족한 게 가장 클 것이고, 그게 주변 사람에게도 보일 것이다. 나는 확실히 이게 문제다. 내가 ‘남에게’ 설명해야 하는 게 앞서고, 부모님이, 아내가, 아이가 ‘남에게’ 내 직업을 설명하게 하는 게 걱정이고 이런 거.

어떻게 보면 이게 종특인데(ㅡ,.ㅡ;), 수십년 쌓아 온 패시브 스킬을 리셋하는 게 쉽지 않다. 결론이 안 나는 이야기지만 한 번씩 다시 들여다 볼 요랑으로 일단 블로그에 끄적여 보았다.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