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 길에 오른 300여 명의 학생을 포함해 400명 이상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근해에서 침몰했다.
다음날인 오늘 오전까지 200명 이상이 실종 상태다. 침몰의 원인, 재난 대응의 문제 등 짚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해야 한다는 것, 더이상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한국 언론이 보여준 모습들만큼은 짚어봐야겠다. 종일 기사들을 보며 울고 분노했다. 가슴이 턱턱 막혔다. 이들은 도대체 사람의 목숨을 뭐로 보는 걸까. 인간으로서도 실격인 자들이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언론의 이름을 달고 야차가 되어 이 비극의 무대를 휘젓고 있었다.
침몰 소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줄줄이 옮겨 쓴 건 약과다. 어떤 사안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제목 낚시와 어뷰징을, 이런 재난사항에서조차 꺼내 들고 휘두르는 악마를 보았다.
이 지옥도를 잊지 않기 위해 그 증거를 여기에 모아둔다. 낚시와 어뷰징, 금전만능주의, 선정적인 비극 관람 등 한국 언론의 문제점들이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쌓여 있다.
그래도 트래픽은 올려야 한다? 낚시 그리고 어뷰징
이투데이: [진도 여객선 침몰] 타이타닉, 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
이투데이는 e스타(연예란) 영화 카테고리에 최두선 기자 이름으로 “[진도 여객선 침몰] 타이타닉, 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이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명백한 낚시 의도를 숨기지 않는 이 글은 역시 네티즌을 반응을 내세웠다. “구조 소식과 사망 소식이 관계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선박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라니. 도대체 이 와중에 어디의 누가.
설령 실제로 이런 반응이 있었다고 해도 언론이 이를 기사로 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기사를 읽은 이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곧 삭제했지만, 그 증거는 캡쳐 화면으로, 또한 구글 웹캐시로 남아 있다.
이투데이: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 임시 기지국 증설 “잘 생겼다 잘 생겼다~”
보는 이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기사 중의 하나인 이투데이의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 임시 기지국 증설 “잘 생겼다 잘 생겼다~”란 제목의 기사다. SKT가 현장에 긴급 구호품을 제공하고 임시 기지국을 증설한 것은 물론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전하면서 제목에 SKT 광고 멘트를 덧붙이는 무신경함이라니.
해당 기사는 곧 뒷부분의 “잘 생겼다 잘 생겼다~”를 뺀 제목으로 수정하고 바이라인도 “온라인뉴스팀으로 바꿔 올렸지만, 곧 삭제되었다. 구글 웹캐시에는 아쉽게도 수정 후의 글만 남아 있다.
2014년 4월 18일 13시 추가: 위의 두 기사와 관련하여 이투데이는 편집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2014년 4월 16일에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SKT 기사의 “뉴스표출 담당부서가 제목을 달아 기사화”한 것이며, “적절치 못한 제목을 붙인 데스크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금전만능주의, 지금이 보상금을 논할 때인가
조선일보: 세월호 보험, 학생들은 동부화재보험, 여객선은 메리츠 선박보험 가입
조선일보는 사고 선박의 보험 가입 여부를 다루면서, “네티즌들은 ~ 반응을 보였다.”로 마무리되는 기사를 냈다.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보험을 얘기하는 천박함이라니.
게다가 이를 소식으로 전하면서 “이같은 세월호 보험 소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보험 그래도 다행이다” “세월호 보험 여행자 보험의 중요성을 느꼈다” “세월호 보험 이 문제가 아니지 않나?” “세월호 보험 불행중 다행”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고 기사를 매듭짓는 무성의함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화방송: “2달전 안전검사 이상 없었다”…추후 보상 계획은?
보험금 타령은 조선일보뿐이 아니었다. 수많은 매체가 ‘세월호 보험’을 키워드로 기사를 쏟아냈다. 네이버, 다음 등에서 ‘세월호 보험’으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200건이 넘는 기사가 나온다.
급기야 공중파인 문화방송까지 이브닝 뉴스에서 세월호 보험과 보상금을 다룬다. 제발. 아직 구조 작업은 끝나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정신들로 이러고들 있는지 황당할 뿐이다.
선정적인 비극 관람을 멈춰라
6살 아이 인터뷰하고, 책상을 뒤져 사진찍고
SBS는 가족이 모두 실종되고 홀로 구조된 6살 아이에게 인터뷰를 시도하고 또 삭제했다. (구글 웹캐시, 영상은 보이지 않음.) jtbc는 구조된 학생을 인터뷰하며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당 영상은 삭제되었고, jtbc 9시뉴스 오프닝에서 손석희 앵커가 사과했지만, 애당초 이런 사고 상황에서 피해자 인터뷰를 경쟁적으로 하는 분위기라는 게 심각한 문제다.
심지어는 서울경제는 위 jtbc 인터뷰 관련 기사를 “JTBC 인터뷰 영상 논란 되자 하는 말이…”이럴 수가!””로 제목 붙여 냈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기사는 삭제되고 구글 웹캐시에도 남지 않았으며 캡쳐 화면으로만 나돌지만, 뉴시스는 김도란 기자 이름으로 “안산단원고 숨진 고교생”이란 제목으로 책상 위에 사망자의 책과 노트를 올려 연출한 사진을 기사로 올렸다 한다. 역시 현재는 삭제되었지만, 트위터에서 연합뉴스 박소정 기자는 단원고 3학년 김민혁에게 “수고 많으시네요.. 혹시 침몰 당시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이 찍은 사진 있나요?”란 멘션을 보내 공분을 샀다 한다.
야차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언론
‘커피찾는남자’는 이런 언론들의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며 “대한민국 언론 누가누가 더 미쳤나-“라는 제목을 붙였다. 무척이나 적절한 제목이지만, 나는 미친 것을 넘어서 야차가, 악마가 되어버린 언론과 기자들의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도대체 이게 뭔가. 그래 안다. 기자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도.
한국기자협회의 ““나는 트래픽 올리는 기계에 불과했다”” 글에서처럼 많은 인턴 기자와 소위 알바들이 온라인 기사 생산에 동원되고 있다. 슬로우뉴스가 “‘슈퍼 갑’ 네이버에 맞서는 조선일보의 패기”에서 다루었듯이, 거대 언론이 어뷰징에 앞장서고 네이버로 대표되는 포털은 이를 방조하고 있다. (단,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는 네이버가 언론사들에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사는 중요한 키워드만 집어넣어 찍어내면 그만이고, 문제가 되면 삭제하면 그만이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그만인 현실. 그 결과가 200명 이상이 실종된 이 거대한 참사 앞에 더 추악한 맨얼굴을 드러내게 했다. 야차의 얼굴로 지옥도를 그리는 한국 언론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과제로 남기고.
2014년 4월 18일 15시 20분 추가: 기사 내용이 아닌 기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공격을 확인한 바 슬로우뉴스 편집팀과 논의하여 내용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 이 글은 “Fast is good, slow is better”, 슬로우뉴스에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