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올림.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타임캡슐] 『비디오 걸』 사춘기 소년들의 꿈에 바침
누군가의 진단에 의하면, 이 나이가 되도록 여자친구 하나 제대로 없는 것은 인생을 너무 심각하기 살기 때문이라는 건데, 호감을 느끼고 나면 그 다음에 호감과 좋아함 혹은 사랑함의 경계에서 나 자신을 열심히 재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가장 감정이 고조된 시기는 어느덧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사랑이 어디선가 뚝 떨어진다면… 아니면 좀 더 가볍게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한마디로 ‘비디오 걸’은 어디선가 뚝 떨어진 사랑 이야기다. (도입부가 넘 허접하자나… ㅡㅡ;) Masakazu Katzura의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은 ‘전영소녀’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해적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지금은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출간되어 15권으로 완간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줄거리는 대충 아시겠지만…
주인공은 일본 만화의 흔한 캐릭터인 ‘평범한 소심남’으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용기는 없는 ‘요타’라는 남학생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비디오숍 ‘극락’을 만나 빌리게 된 비디오에서 튀어나온 ‘아이’라는 소녀와 만나게 되고…
요타는 모에미를 좋아하는데, 모에미는 다카시를 좋아하고, 그런 모에미와 다카시가 잘 되게 요타는 조언을 해주면서 괴로와하고, 아이는 고장난 비디오데크로 재생되는 덕에 요타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런 아이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타도 애정을 느끼고, 그런 요타에게 소노코가 좋아한다며 다가오고, 그러다가 복잡다단한 사건이 생기고…
하여간 중첩된 다각 애정 구도 속에서도 각 인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날 뿐더러, 이 작가가 특히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탁월한 재능 덕에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사실은… 심리 묘사는 별로 안 중요했던 듯… ㅡㅡ;;
이야기 자체의 결말은 해피엔딩인 러브 판타지이지만, 누구나 한번씩 겪어봤음직한 사랑의 고통과 기쁨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도와주는 고통’에 대해 많은 얘길 하고 있다. 요타는 모에미를 좋아하지만 모에미가 좋아하는 자신의 친구 다카시와 잘 사귈 수 있게 도와주면서 괴로와하고,
다카시는 처음엔 그저 친구 요타를 자극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이 모에미를 사귀지만 나중에는 좋아하게 되었음에도 친구를 위해 모에미를 포기한다. 또한 아이는 요타를 좋아하지만 비디오 걸의 임무 때문에 늘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도와주면서 괴로워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묘사는 작가가 생각하는 진실된 사랑, 혹은 궁극의 사랑의 상이 아닌가 싶은데,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랑을 잘 만들어갈 수 있게 기원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허나… 그거 정말 쉬운 거 아니다. 확 재를 뿌려도 시원찮을 판에 그렇게 한다는 거. ^^; 그리고 그 고통도 장난 아닐 것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요타와 아이는 맺어지지만, 내가 더 관심이 가는 건 다카시와 모에미와 소노코다. 그 세명은 행복할까? 다카시는 요타와 여전히 친구일까, 모에미와 소노코는 요타를 원망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사랑을 찾았을까…
아마도 작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상처와 불신, 그리고 원망만이 남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정말 사랑했다면 어떤 식으로 헤어졌든 간에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비디오샵이나 함 뒤져볼까?
Written by 뗏목지기 (200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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