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열혈초등학교” 연재 중단과 관련하여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간만에 (저로서는) 긴 글을 쓰려니 머리에 쥐 나네요. ㅡ,.ㅡ; 글의 성격상 반말체이며,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대체로 링크로 처리했습니다. 하나씩 클릭하면서 읽으시면 더 귀찮아요. 좋습니다.
1. 그들의 저격
어떻게 보면 꽤나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웹툰의 한 컷이 중앙일간지의 1면에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23인치 모니터에서서 브라우저 배율을 200%로 해도 나올까말까한 크기로 실렸다. 그 이름을 말하기를 누구나 꺼려하는 볼드모…가 아니라 C일보에.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정밀하게 조준 사격한 이 기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불을 지피고는 싶은데 땔깜이 워낙 부실해서 활활 타오를 수준이 될 수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C일보는 이제 굵직한 의제 제기 따위는 포기한 듯 하다는 분석이 우세하게 느껴졌다.
2. 드라군방심위의 출동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학교 폭력 조장의 원인으로 지적받는 폭력적 성향의 인터넷 연재 웹툰에 대해 중점 모니터링을 진행”으로 꺼져가는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 거다. 그래, 뭐 여기까지도 상관은 없다. 웹툰 심의권을 방심위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네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제대로 한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방심위가 실제로 액션을 취하고 나면 방심위가 타겟이 될 거라고 보았다.
3. 알아서 기는 자들
그런데 이게 왠일? 해당 작품의 연재 중단이 작가에게 통보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단 작품을 내리더라도 19금으로 변경한 후에 연재를 재개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이 부분의 출처를 찾을 수가 없군요…) 아예 연재가 중단되었다. 정말로 내용이 문제가 된다면 등급을 조정하여 연재를 지속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러웠겠지. 그리고 미성년 접근을 차단하면 조회수가 떨어질 것이 뻔한데, 그런 만화에 원고료를 왜 주냐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을 게다. 말하자면 만화라는 콘텐츠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이 겨우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소재고갈과 논란으로 인한 심적 부담으로 작가 스스로 연재를 중단”한 것이라고? 누가 믿나. 어쨌든 현재 해당 작품은 최근 5회분을 제외하고는 노출되지 않은 상태이며, 19금 전환 후 다시 노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4. 그리고
이에 (사)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 관련 6개 단체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네이버에 ‘특수 영능력 수사반’을 연재하고 있는 사다함 작가가 1월 11일자 연재분에 표현의 자유 수호 배너를 넣는 등 일련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이다. 만화가 사라지면 학교폭력이 사라지냐는 그 물음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일부 만화의 원인으로 재단하는 행위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성명서의 내용을 지지한다. 그러나 만화관련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는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것은 안타깝다. 처음 C일보에 기사가 났을 때까지는 무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일리가 있었지만, 방심위가 나섰을 때 바로 움직임을 보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야후의 잘못된 판단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런 지적도 사후약방문이지만)
이 사안에서 해당 작품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심의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허용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심의든 뭐든 절차를 통해 미성년 관람불가 등의 등급을 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원 폭력의 문제가 만화에 있다는 식으로 저열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국가기관이 가볍게 놀아나고, 포털이 폭력적으로 해당 작품을 종료시키는 식으로 결말이 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BBK 사건으로 가카를 물고 늘어지다 깜방에 가면 폼이라도 나지만, 학교폭력을 개그 소재로 삼다 연재중단하는 건 걍 개쪽일 뿐”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폼 나고 싶어서 연재중단당할 소재로 작품을 그리는 만화가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말하면 깜방에 가 계시는 분도 폼 나려고 간 게 되니까.(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면 할 말 없지만)
굳이 폼나느냐 마느냐로 얘기를 하고 싶다면, 이 사안에서 폼 안나게 행동한 건 위에서 말한 딱 셋이다. 야후는 자기들이 제공하는 컨텐츠에 대해 일말의 이해도 없음을 폭력적이고 폼 안 나는 방식으로 증명했고, 방심위는 국가 기관 씩이나 되어서 일개 언론(라고 하기엔 좀 쎄 보이긴 했겠지) 기사에 부화뇌동하는 폼 안 나는 집단임이 분명해졌고, C일보 또한 폼 안 나는 찌질한 방식으로 그들의 ‘빛나는’ 시절을 망각한 젊은이들에게도 악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제 제발 좀 알자. 표현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이며, 그것을 제한할 때에는 가장 엄격하고 엄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런 식으로 찌질하게 접근해서 찌질한 결말 좀 만들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