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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뉴욕 뉴욕』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지난 금요일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정신이 없어서(?) 타임캡슐을 올리지 못했네요. 잠정적으로 금요일은 타임캡슐의 날입니다. (타임캡슐이란, 클릭) 『아빠와 나』, 『Just Go Go!』로 잘 알려진 라가와 마리모의 작품입니다.


[타임캡슐] 『뉴욕 뉴욕』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뉴욕 뉴욕
라가와 마리모, 대원, 2002년 06월 전4권 완간


지방선거 투표를 하러 근처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갔었다. 투표 자체야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는데(희한하게도 내가 구청장 후보에 대한 유인물만 안 보고 갔었다는 걸 알고 당황했지만) 나오면서 복도 게시판에 써 있던 문구 때문에 좀 기분이 상했다.

‘일본 폭력/음란 만화를 보지 맙시다’

폭력과 음란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만화’가, 또한 ‘일본 만화’가 그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으로 버젓이 붙어있는 그 문구는 되게 기분 나빴다. 내가 찍은 후보가 하나도 당선이 안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해서도 파고들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선입견과 자의적인 기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성애 사이트와 중고 자퇴생들의 사이트가 왜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 되어야 하는가. ‘다름’을 ‘틀림’과 동의어로 만들어버리는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악몽이다.

얼마전 애장판으로 다시 출간된 ‘아기와 나’의 작가 라가와 마리모의 작품 ‘뉴욕 뉴욕’도 19세 이상 관람가이다. 내용상으로 봐도 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이 작품은 단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성인만이 봐야 하는 만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참 짜증난다.

그러나, but, 해적판으로만 볼 수 있었던 ‘뉴욕 뉴욕’이 정식 번역판으로 출간되었다는 건 기쁘다. 분량으로 봐서는 4권까지 발간될 듯 한데, 빨리 완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뉴욕 뉴욕
『뉴욕 뉴욕』의 다양한 판본들. 왼쪽부터 피플코믹스, 하이북스, 대원

동성애자인 경찰관 케인은 게이바에서 만난 멜에게 첫눈에 반해 함께 살게 된다. ‘지저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생각하며.

작품 전편에서 그 둘의 사랑은 너무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서, 두 사람 모두 남자라는 점을 빼면은 일반적인 멜로물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연적의 출현과 질투, 성격상의 마찰과 성관계에서의 갈등 등 여느 연인들과 하등 다름없는 문제들로 그들은 고민한다.

물론 동성애자이기에 가지는 문제들도 있다. 케인이 자신의 부모에게 커밍아웃한 이후에 일어나는 갈등과 어떤 사건을 통해 케인이 동성애자임을 알게된 동료들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넓어져 간다.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 구하는 가치도 존재도 다른 인간. 나의 닫혀진 마음이 넓어져간다.’ (Epiosod II Scene 3 – 케인의 어머니 에이다 워커의 독백)

두 남자의 애절한 사랑.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풀림. ‘아기와 나’에서도 볼 수 있었던 소외된 존재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눈길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마지막 에피소드V에서는 에리카라는 귀여운 여자아이를 양녀로 들이면서 케인과 멜이 죽을 때까지의 내용이 에필로그 형식으로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딸을 무척이나 사랑했으며, 그 딸은 훌륭하게 자라 결혼을 했고, 멜이 죽을 때까지, 한참 후에 케인이 죽을 때까지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프리 라이터인 에리카의 남편은 케인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멜 프리데릭스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하하… 그렇지. 어쨌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네. 지저스… 운명이다… 라고 생각했다네…’

뉴욕 뉴욕


다름과 틀림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by 뗏목지기(200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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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