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8시에 용산CVG에서 있었던 『이끼』 시사회를 관람했습니다. 원작 만화의 팬으로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봤죠. 분석적인 리뷰까지는 (능력상) 무리고, 짧은 감상평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이끼』개봉특집] 윤태호 작가의 과거와 현재 『야후』 vs. 『이끼』보러가기
영화 『이끼』 과연 원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관계를 끊고 지냈던 아버지(유목형, 허준호 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해국(박해일 분)은 아버지가 살던 마을로 향합니다. 해국은 상을 치른 후 마을에 남고자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죠.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요? 아버지는, 이장(천용덕, 정재영 분)은, 속을 알 수 없는 여인 영지(유선 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솔직한 느낌을 말하자면, 영화 『이끼』는 원작 만화 『이끼』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원작 전체를 감싸는 서늘한 공기는 영화 군데군데 끼어든 코미디에 의해 상당부분 희석되었더군요. 때때로 배경 음악은 과도하게 긴장감을 강요하며, 원작과 다른 결말은 천용덕의 카리스마를 결정적으로 깎아내고 말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이끼』가 추천하기 민망할 만큼의 영화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작을 본 사람이 실망하는 건, 대부분 영화와 원작을 일 대 일로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런 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영화 『이끼』는 163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크게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긴장도와 재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2주동안 제주도로 행방불명되었다가 나타나서 찍었다는 덕천(유해진 분)의 절규 씬을 비롯, 많은 장면들을 완성도 높게 만들어준 배우들 – 주/조연을 막론하고 – 의 열연은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좀 더 비중이 높아지고 재창조된 영지의 캐릭터도 매력적입니다. 좀 더 영지에게 집중한다면, 결말의 반전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 캐릭터를 별로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던 강우석 감독의 전작과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발전이 있었다고 할까요.
물론 의견은 분분합니다. ‘둘 중의 하나만 고르라면 원작만화만 보라, 영화를 보는 것은 원작을 보는 재미를 빼았는다‘라거나, ‘한 편의 대중영화로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면서도 좀 더 효율적인 선택’이라거나. 이런 논란들은 훌륭한 원작을 가진 2차 창작물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겠죠. 결국 선택의 관객의 몫이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겠군요.
[부록] 영화와 원작만화의 결말, 무엇이 다른가?
이 부분은 절대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셨거나 안 보실 분만 클릭해 주셔요.
[spoiler effect=”simple” show=”『이끼』 결말은?” hide=”앗, 잘못 눌렀다.”]
원작 만화는 궁극적으로, 죽은 유목형과 산 천용덕의 대결입니다. 내내 죽을 고생을 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던 해국은 장기말이었다고나 할까요. 해국을 마을로 부른 것은 천용덕입니다. 제어 가능하며, 죽은 유목형의 역할을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던 거죠. 그러나 해국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천용덕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것은 이미 유목형의 계산에 있었습니다. 천용덕이 해국을 마을로 부른 이유와, 죽기 전에 이미 유목형이 해국의 역할을 결정해 두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회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모든 그림을 그린 것이 ‘영지’임을 암시합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해국은 마을을 다시 찾죠. 그 곳에서 영지의 미묘한 미소와, 마을로 자신을 부른 것이 영지임을 떠올린 해국의 놀란 표정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원작에 비해 영지의 캐릭터가 좀 더 부각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결말이 크게 무리수는 아니라고 봐요. 하지만, 원작 팬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정점이 되고자 했던 천용덕의 카리스마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결말이라 무척 아쉽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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