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힙합』/『스바루』 부자유의 벽을 넘어
『힙합』 – 김수용, 서울문화사
『스바루』 – 소다 마사히토, 학산문화사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읽혀질 수 있다. 불과 도구의 사용은 자연과 강한 짐승들로부터의 부자유를 깨기 위함으로, 노예제와 봉건제를 거쳐 현재의 사회체제를 만들어 온 과정 또한 그렇다고 본다.
원초적인 표현 수단의 하나인 몸짓(춤의 원형이랄 수 있는)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의 벽을 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본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정은영 님의 페이퍼 ‘댄스 댄스 댄스 (1)'[하단 관련글 링크 참조]에서는 일제 강점기 하의 댄스홀 문화에 대해서 다루었지만, 이 또한 봉건적인 사회 풍토 속에서 부자유스러운 여성의 삶이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사회적인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뀐 측면이 있지만,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춤에 빠져 있는 청소년(요즘은 비보이라는 용어를 쓰지만)들을 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가 않다. 게다가 왜 청소년들이 춤에 빠져드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어른들(굳이 청소년과 어른이라는 축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또한 많지 않다.
이들 비보이들의 생각과 현실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싶다면, 좀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힙합’을 떠올릴 수밖에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만화의 소재의 폭을 넓혔다는 점(일본 만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재로), 만화적인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소재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 만화의 수준 자체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물론 비보이들에게 왜 춤을 추냐고 직접 물어본다면 ‘그냥, 좋아서요’라는 답이 제일 정확한 답일테지만, 봉건 사회에서 한국 여성들이 삶의 부자유스러움을 댄스홀에서 떨쳐내려 한 것처럼,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부자유스러운 청소년들의 삶의 형태에 답이 있다고 한다면 심한 억측이 될까.
어쨌든 사회적인 영역까지 너무 파고들지 않더라도 ‘몸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춤이 가진 매력이고 , ‘힙합’은 그 자체로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분야는 다르지만, 발레라는 분야에서 정점에 서고자 하는 ‘스바루’의 이야기 또한 ‘몸의 자유’를 위한 험난한 여정이다. (뭐,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라는 건 인정하지만. 꾸벅~)
‘스바루’의 작가는 ‘출동 119 구조대'(완전판 1~10권 완결, 대원씨아이)라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졌고, 현재 ‘카페타'(1~11권 미완결, 학산문화사)라는 작품을 발간중인 소다 마사히토다.
발레라는 소재라면 왠지 지루할 것 같지만, 작가는 이전 작품에서처럼 정신적,육체적 한계(이 또한 부자유의 영역이 아닌가! 너무 심하게 갖다 대서 죄송합니다만. 꾸벅~)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탁월한 연출력으로 풀어 나간다. 소재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의 여정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잘 이끌어주어 재미에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작품이다.
게다가 이 두 작품은 나같은 몸치(몸의 자유와는 거리가 먼)에게도 그 세계를 대리만족시켜서 정신적인 자유를 준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흠.) 뭐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래서 이 직딩 만화광은 오늘도 만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 하에 댄스홀을 찾던 이들처럼, 여기저기 깨져가면서도 오늘도 연습을 계속하는 비보이들처럼, 발끝이 뭉개지도록 턴을 하는 발레리나처럼.
by 뗏목지기 (2006-11-20)
from 싸이월드 페이퍼
(덧붙임 :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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