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영점프』의 점프, 그리고 좌절

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영점프』의 점프, 그리고 좌절

(c) 2003 (주)서울문화사


영점프가 2003년 1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이 된다. 오늘까지 공식 공지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영점프 사이트 자유게시판에 폐간에 대한 글이 올라왔고, 기자들과 작가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영점프가 올해 들어 6개월간 보여주었던 변화된 모습은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었고, 침체되어 있으면서도 새로운 변화의 모색에는 둔했던 만화계에 대한 신선한 도전이었다.

영점프는, 다른 만화잡지들이 회사 사이트 내에 간단한 소개페이지와 게시판 하나만 달랑 만들어 놓았던 현실에서, 보기 드물게 독자적인 URL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사이트(http://www.youngjump.com) 를 구축했다. 또한 점프토크, 자유게시판 등 잘 구성된 메뉴들을 통해 기자와 작가들, 독자들의 의욕적으로 접점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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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인디존’이란 코너를 통해 ‘뷰띠불 레인저’의 메가쇼킹만화가, ‘미찌꼬 아줌마’의 강무선 등 독특하고 발랄한 시선을 가진 신인작가를 발굴해 내었고, 국내 작품의 비율도 일본 작품보다 상당히 높을 정도로 국내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 컸다. (반 가까이 일본 작품인 잡지들이 훨씬 많은데.) 영화 ‘두사부일체’가 소재를 차용했다 하여 화제가 되었던 ‘차카게살자'(신인철/김기정), 신인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독창적인 그림체와 스토리텔링이 돋보였던 ‘굳세월아 군바리'(나병재), 법의학이라는 흔하지 않는 소재에 과감하게 도전한 ‘감식반'(최희연) 등, 영점프에 연재중인 국내 작품들은 질적인 면에서도 일본 만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 외에 만화에 대한 좋은 내용들을 매주 다루어 주었던 주재국 칼럼이라던가, 기자들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비 더 만화 매니아'(기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엄청 망가져가며 사진으로 만화를 패러디하는 코너) 등, 새로워진 영점프는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물론 경영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천 부도 채 팔리지 않는 잡지를 존속시켜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검증(?)된 작품들을 수입해와서 팔고, 국내에서도 이름 알려진 유명작가들을 섭외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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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 속에서도 영점프는 어렵사리 변화를 시도했을 것이고, 그 변화에는 비용(인적이든 물적이든)이 들었을 것이며, 6개월이 지나도 수익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그래서 결국 폐간을 ‘통보’ 받았을 것이다. 사실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만화 산업의 오랜 침체와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원인들을 구구절절이 늘어 놓자니 속만 타들어 간다. 다만 영점프의 사례는, 그저 존재하던 하나의 잡지가 수익상의 이유로 폐간된 것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원래 쏟아 부은 게 많으면 실패했을 때 좌절도 크지 않은가. 어쩌면 다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잡지와 작품이, 기자와 작가가, 그 모든 것과 독자들이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는 잡지라는 매체에서 젊고 의욕적인 신인 작가들의 별나지만 참신한 작품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책 만드는 기자들이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카메라 앞에 서는 모습은 못 볼지도 모른다. 이 실패가 밑거름이 되어 언제가는 한국 만화계에서 정말로 잡지다운 잡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 서글프고 힘이 빠진다.


by 뗏목지기(2003. 6. 30)


(덧붙임 : 2010. 06. 15)

* 당연한 얘기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영점프 사이트는 지금은 접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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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