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돌연변이』 내 마음이 저절로 남에게 전달된다면
원제 사토라레(サトラレ), Makoto Sato, 세주문화, 2002년09월 3권 발간
사토라레는 선천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타인에게 저절로 전달된다
원제인 사토라레는 ‘사념전파자’라는 의미로, ‘선천성 R형 뇌량 변성증’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물론 설정이지. ^^)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기의 생각이 주변 사람에게 전해지는 증상을 가진, 천만 분의 일 확률로 태어나는 돌연변이들이다.
그러나… 이 번역 제목은 도대체 머란 말인가. 세주문화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번역 제목도, 표지 디자인도 무성의할 뿐더러 원작에는 있는 작가 코멘트까지 생략해 버렸다는 것은 좀 화가 나는 일이다.
어쨌거나 이런 괜찮은 작품을 이렇게 만들다뉘.
일반인들은 사토라레를 발견해도 모른 척 해야 한다
생각이 모두에게 읽힌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선의의 거짓말도 할 수 없고, 데이트하는 자리에서 ‘똥마려워’하고 생각하면 바로 전달되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마 사춘기 즈음에는 다 자살하고 없겠지.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놀랍게도 ‘사토라레 특별 보호법’을 제정하여 특수기관이 이들을 보호하며 주변 사람들을 관리한다. 사토라레의 주변 사람들은 사토라레가 스스로 사토라레임을 알지 못하게 철저하게 교육받으며, 사토라레가 여행 등 돌발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전 국가적으로(!) 적극 대처한다.
사실 생각이 모두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섭고 끔찍한 일이지만, 이보다는 그런 순수한(혹은 바보 – 일반적으로 너무 솔직한 사람은 이렇게 불리니까)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가벼운 터치로 그리고 있다.
또한 생각이 모두에게 노출되는 사토라레란 존재를 통해, 오히려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진실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평범한 사람들은 사토라레의 생각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려 노력하고 그 때문에 곤란한 상황도 겪는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일반인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사토라레라는 존재와 마주치게 함으로서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들은 가식만이 아닌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는 것이며, 그 가식과 배려의 갈림길에서 자신과 상대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며, 타인과의 교류를 위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정말 재밌고 괜찮은 작품이다.
국내 출판사의 무성의한 출판이 좀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1권에서의 약간은 허술했던 설정이 2권에서 1권에 나온 인물들의 후속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많이 보충이 되었다. 3권을 기대해보자.
그러고 보면 내 생각을 모두가 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들도 많이 있긴 하다. 그럴때 사토라레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하지 않으면 모르시나요. 내 마음을.
Written by 뗏목지기 (2002. 6. 6)
이 작품은 2001년에 영화화되었다
이 작품은 2001년에 영화화되었고, 정식으로 국내에 수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영화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며, 소규모 영화 페스티벌 등에서 많이 상영되었다.
영화 ‘사토라레’는 ‘춤추는 대수사선’의 모토히로 카츠유키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안노 마사노부(‘키즈 리턴’, ‘배틀 로얄’ 등 출연)가 자신이 사토라레임을 모르는 천재 의사 켄이치 역을 맡았다.
원작이 사토라레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를 다소 코믹하게 담아내었다면, 영화는 재미와 함께 인간관계의 성찰까지 감동적으로 잘 담아내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덧붙임 : 2005. 03. 28)
아주 천천히 발행되고 있는 작품이지만 나올 때마다 반가운 작품입니다. 작가가 풀어 놓고 싶은 이야기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여유있게 즐기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던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위로하고 기대면서 살 수 있는거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역시 마음을 다 들키는 건 그닥 좋은 일은 아닌 듯 하네요. ^^
(덧붙임 : 2010. 05. 26)
2005년의 덧붙임에, 앞서 소개한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 얘기가 나오는데, 현재 블로그에는 아직 올라오지 않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