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용오』 초인적인 협상가의 지적인 액션

음, 타임캡슐은 제가 여기 저기에 올렸던 만화 관련 글을 모으는 곳. 예전에 썼던 글들이라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많음. 하지만 백업의 의미로 거의 수정 없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작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춤법만 수정) 올림.

[타임캡슐] 『용오』 초인적인 협상가의 지적인 액션

(c) 2001 학산문화사

Shinji Makari, Syu Akana / 학산문화사 / 2001년10월 17권까지 발행

네고시에이터(The Negotiator / 감독: 개리 그레이 / 1998년작)라는 영화를 보면서, 지적인 액션을 펼치는 그들만의 매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인질극 협상 전문가였던 주인공 대니 로먼(사뮤엘 잭슨 분)이 경찰의 음모에 휘말리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료를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면서, 또다른 협상가 크리스 세이언(케빈 스페이시)과 협상을 벌이는 내용이다. 협상가와 협상가의 두뇌 대결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이나,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 바로 이 『용오』이다.

협상가인 주인공 용오(일본명: 유고 벳부)가 전세계를 무대로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 작품은, 그 구성의 탄탄함과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흔히 ‘마스터 키튼(우라사와 나오키 / 대원 / 2000년7월 17권 완간)과 비교될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물론, 마스터 키튼 같은 여유와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담겨 있지 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이 작가도 역시 작품의 무대가 되는 아프가니스탄, 체첸, 에이레 등을 직접 돌며 취재를 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배경이나 인물 묘사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협상가에 대한 만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사실은 이 작품은 ‘고문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만화 같기도 하다. ^^ 그러면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고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청년백서냐? ^^;)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옷 벗기고 돌바닥 위에 눕혀놓기

이슬람 단체에 붙잡힌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협상을 나섰던 용오가 붙잡혀서 처음 당하는 고문. 목이 말라붙고, 피부가 달궈진 돌에 달라붙어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용오는 코란을 외운다. 당연히 이슬람 신봉자인 녀석들은 두려웠겠지.

작품 속에서 체감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곳에서 돌바닥이 도대체 몇 도나 될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큰 칼로 팔 하박 꿰뚫기

돌바닥에서 풀려난 용오는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스스로 신의 보호를 받는 용자임을 자처하며 협상을 촉구한다. 그 증거를 보이기 위해 칼로 스스로 칼로 팔을 꿰뚫어 몸 쪽으로 당기기 시작하고… 피가 분수처럼 튀는데 끄떡도 하지 않는 용오. 결국 인정받은 용오는 인질반환 협상을 시작한다.

뼈나 힘줄은 다치지도 않았는지 지혈만 하고 잘 다니더만.

소금항아리에 담그기

중국 반환 직전의 홍콩편에서 나온 얘기로 기억하는데, 역시 붙잡힌 용오는 소금이 가득 든 큰 항아리에 발가벗겨진 채 담궈진다. 머리만 달랑 밖으로 나온 채… 인간 젓갈… 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 일만에 풀려나서는 몇 시간 만에 제 발로 걸어 다니는…

물론 온몸이 앙상해진 채로였지만, 원래대로라면 하루면 몸의 수분은 모두 빠져나가고 피부는 녹아서 너덜너덜해져 죽어버릴 텐데, 역시… 이 넘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공유리구로 피부 터뜨리기

아마도 부황을 뜰 때 쓰는 유리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걸 쓰면 피부가 약간 부풀어 오르면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하는데(피부에 피가 송송 맺힌다), 이 유리구를 완전 진공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피부가 왕창 부풀어 오르다가 퍽! 하고 터진다.

어느 에피소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용오는 이런 고문을 당하고도 견뎌낸다. 물론 아파하긴 하더라만, 그 다음 에피소드를 보면 등에 흉터 하나 안 남아있더군. 그러고 보니 그의 팔도 칼자국 하나 없이 매끈하다.

영하 40도의 시베리아 벌판 수십킬로 걷기

러시아 왕조의 유산에 얽힌 에피소드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건 고문은 아니었고, 협상 완수를 위해 스스로 어두운 밤 혹한의 시베리아 벌판을 수십 킬로 가로질러 가는 거였다. 그러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산가들도 밤에는 캠프를 만들어 쉬고 가능한 한 따뜻한 시간에 종주를 시도하는 법이다.

이런 저온에서는 땀이 더 위험한 냉매가 되고(물론 땀 흡수가 잘되는 재질의 옷을 입는다는 설정이 나오긴 하지만), 저체온증에 손발가락(손발가락은 가장 방한이 힘든 부위다)이 괴사에 이르기 마련이며,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상 얼굴부분은 일정 정도 외부와 노출이 된다.

근데… 걸어서 갔다고?

잠 안 재우기, 단순한 질문 반복

역시 위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얘기로, 인간은 아주 단순한 질문과 대답을 무한정 반복하면 자아가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게 된다. ^^ 그걸 몇날 며칠 반복하다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물으면 자아가 외출 나간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용오는 그런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질문을 하자 놀라운 대답을 한다. ‘모른다…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순간에 생각을 멈춰두었다’ 오옷~~ 얼마나 대단한가. 그는 생각을 멈추는 능력이 있는 것이었다. 무슨 오디오냐, 머리에 Pause 버튼이라도 달려있는 것인지.

그 외에도 이런 저런 고문과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것이 나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분쟁의 상처에 휩싸인 지구의 인간들을 위해 안드로메다 어디에서 파견나온 외계인 용오의 활약을 그린 SF 판타지인 것이다!

아마도 20권 쯤에 용오가 외계인임을 스스로 밝히며, 인간들에게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며 고향별로 돌아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라 한다.

정말이냐고? 물론 뻥이다. 멀 묻고 그래? ㅡㅡ;

하여간, 용오의 비상식적인 정신력과 체력은 믿어지지가 않지만, 주인공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기획과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교와 인종, 국가간의 대립으로 얼룩진 세계의 모습, 그리고 그 위에 얹혀진 용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읽는 이를 푹 빠져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용오의 개인사를 다루면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좀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머… 그런 얘기가 나온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온 그와 작품의 이미지를 헤치게 되는 결과는 될까…?

사실은 나도 외계인이야
Written by 뗏목지기 (2002. 5. 7)

참고자료


(덧붙임 : 2005-03-23)

지금 현재 22권까지 발매된 상태고 발매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위 글에서는 초인적인 용오의 능력에 중심을 둬서 얘기를 했지만, 작품 전반에는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직접 취재를 통한)과 제3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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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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