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얘기 좀 해

 

밀크 코리아 2016년 04월호 DADDY COOL 코너에 실은 글. 원문에는 실명, 블로그엔 OO.


OO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예상했던 대로 우리 부부의 걱정거리도 늘어났다.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며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낸다. 챙기고 내야 할 서류도 많고, 방과 후 활동을 신청하라는데 종류가 뭐 이리 많은지 안내문만 봐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수업 시간에 얌전히 있지 못해 야단을 맞았단다. 이건 또 어쩌나.

(c)미디어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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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아빠 금성 엄마

“OO이 수업시간에 야단맞았대. 너무 속상해.” 아내가 한숨을 쉰다. “뭐 아직 어린데 그럴 수도 있지. 잘 타이르면 되잖아.” 대답하고는 아차 싶었다. 오래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남자]를 읽은 나같이, 모범적이 되고 싶지만 잘은 안 되어도 어쨌든 노력하며 알콩달콩 성실하게 살아가려는(헉헉) 남성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자기 그 얘기 듣고 맘 많이 상했나 봐. 나도 당황스럽네. OO이가 뭐라고 말했어?” 이랬으면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상위권에는 들었을텐데 깜빡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결혼한 후 긴 시간 동안 아내와 나는 부지런히 싸웠다. 대부분 부부가 그렇듯 별 거 아닌 일로도 다투고 별 일로도 다퉜다. OO이가 태어나고 나서 육아와 관련해 충돌하는 일도 늘었다. 사실 같이 산 시간보다 따로 보냈던 시간이 더 긴 두 남녀가 만났으니 당연히 부딪히게 되어 있다. 존 그레이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는 이런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남자는 답을 내기 위해 대화하고 여자는 공감하기 위해 대화한다거나, 남자는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동굴에 들어가 혼자가 되지만 여자는 상대를 찾아 이야기한다는 내용 등이다.

그럴 수도 있지 vs. 관심도 없지

아내의 속 상함에도 이유가 있고 내 무덤덤함에도 이유가 있다. 쉽게 공감하는 여성의 특성은 종종 자녀에 대한 ‘동일시’로 드러나곤 한다. 말하자면 자녀를 남이 평가하면 이를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앞서 나처럼 잘못된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지뢰가 터지는 거다.

물론 나로서는 사실 “그럴 수도 있지”가 여전히 솔직한 속마음이다. 아내에게 공감하는 표현을 했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역시 남자는 육아나 아이에게 무관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존 그레이의 책을 다시 떠올려보자. 남자는 보통 답을 내기 위한 대화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남자가 말하는 “그럴 수도 있지”를 풀어쓰면 이렇다. “그럴 수도 있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야.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 이제 답을 찾아볼까?” (어디선가 ‘말도 안 돼!’라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육아와 대화에 정말 관심 없는 남편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말이 짧을 뿐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니 “그럴 수도 있지”에다 대고 “뭐가 그럴 수가 있어? 내 말 듣기는 했어? 관심도 없지? 늘 그런 식이야!” 이러지 말자. 눈물난다. 숨어있는 뒷부분을 생각하며 “나 속상해, 위로 먼저 좀 해줘.” 또는 “고치긴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 보면 어떨까. 물론 앞서 말했듯 남편이 할 일도 당연히 있다. 공감 먼저 하기, 생략하지 말고 끝까지 말하기.

아빠들은 왜 교육에서 한 발 물러날까

며칠 전엔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가 방과 후 활동 안내 팸플릿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떤 활동을 어떤 시간에 하게 할까 고민을 거듭한다. 마치 수강신청 전에 시간표를 이리 만들어보고 저리 만들어보며 고심하던 대학 시절 생각이 난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애가 하고 싶다는 거 몇 개 적당히 넣어. 드론이나 로봇 괜찮겠다. 나도 좀 해보게.” 아차, 나는 또 이렇게 스위치를 잘못 눌렀다. 대피하라! 퍼펑!

주위를 보면 확실히 과거보다 아빠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는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그래도 엄마들과 비교하면 한 발 뒤에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남녀 차이를 말할 때 자주 나오는 길 찾기에 관한 예가 있다. 대체로 남자는 몰라도 묻지 않고 여자는 알아도 물어본다는 거다. 이해가 안 되긴 한데 나도 그런 편이다. 전에는 안 물어봐서 늘 혼났고 요즘은 스마트폰 검색과 내비게이션 덕분에 ‘덜’ 혼난다.

엄마들이 교육 관련 정보를 얻는 통로는 주로 엄마들 커뮤니티다. 정보 과잉 때문에 교육 현실에 관한 불안이 커질 위험도 있지만, 대체로 공감을 통해 대화하는 여성의 특성이 모여 각자가 가진 정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면이 장점이다. 그런데 아빠들은 커뮤니티가 거의 없고 있어도 대화를 그리 길게 하지 않는다. 결론 중심으로 짧게 이야기하고 모르는 건 묻지 않고 각자 검색한다. 그렇다 보니 엄마들보다 접하는 정보가 절대적으로 적다. 그러니 ‘답을 내기 위한 대화’를 하는 남자로서는 아내에게 정보가 더 많으니 이 부분은 아내에게 맡기고 대화는 그만해도 되겠다고 판단하게 된다. “알아서 해”, “관심도 없지?” 이렇게 전투가 시작된다.

남과 여가 아닌 부모의 이름으로

요즘도 아내는 OO이가 만화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고 걱정하고 나는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이 있다며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가 일찍 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나보다는 느슨하게 여기는 편이다. 몇 년 전엔 도서 전집을 포함한 학습지를 구매하려고 아내가 부른 영업사원을 내가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육아와 교육에 관해 아내와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딪히곤 한다.

심지어는 양치질에 대해서도 그렇다. 아내는 OO이가 자기 전에 꼭 양치질을 하게 하는데 나는 살짝 너그러운 편이다. 하루쯤 안 할 수도 있지 않나, 뭐 그런 식이다. 말하자면 너무 깨끗한 환경을 추구하다 아이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각종 질병에 노출되면 학업 성취도가 낮아지고 장차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남성 특유의 합리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고 이건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니까 고쳐야겠다. (흠)

어쨌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티격태격하고, 다투고, 싸울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가끔 아내와 얘기하다 결론으로 점프할 거고 아내도 동굴에 있는 내게 가끔 돌을 던지리라. 그래도 10년을 넘게 살면서 의견의 차이 자체보다는 어떻게 대화해서 생각을 모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잘’ 싸우고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뗏목지기

일, 가족, 사회, 만화의 조화를 추구하는 잡다한 인생. 기본은 남자 사람. 아이폰6와 맥북에어를 아끼는 시스템 엔지니어, 슬로우뉴스(slownews.kr) 편집위원. OO 아빠. 뗏목지기라는 닉네임 뒤에서 살고자 했으나 페이스북에 의해 실밍아웃당한 뒤 자포자기함.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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