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맥북,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에 사망선고를 하다 [슬로우뉴스]

내게 애플 워치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수십 년을 안 찬 시계를 찰 이유를 애플이 단번에 만들어줄 것 같지 않았고, 이 생각은 발표를 보고서도 변하지 않았다.

맥북은 조금 관심이 갔다. 지금 쓰는 맥북 에어 13인치는 2011년 모델이고 맥북 에어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오면 바꾸겠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맥북의 12인치라는 크기와 CPU 클럭 속도에 물음표가 붙었다.

단 한 개의 외부 포트가 USB-C?

주목했던 건 맥북 자체가 아니라 맥북의 외부 포트였다. USB-C라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익숙한 것 같은 이름의 포트가 그것도 단 한 개만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USB 3.1 타입 C’이다. 3.1은 프로토콜 버전을 뜻하고 타입 C는 커넥터의 모양을 뜻한다.) 이 포트 하나로 충전도 데이터 전송도 외부 모니터 연결도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커넥터의 모양은 앞뒤 구분이 없다.

USB 3.1 타입 C 커넥터

USB 3.1 타입 C 커넥터

데이터 전송도 외부 모니터 연결도 가능하다는 데서 애플이 2011년부터 자사 제품에 적용한 썬더볼트 포트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럽다. (애플 홈페이지에서는 썬더볼트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나 고성능 데이터 기기를 하나의 소형 포트를 통해 지원하는 혁신적인 I/O 기술”이라 소개하고 있다.) 충전도 할 수 있고 커넥터가 앞뒤 구분이 없다? 주어를 빼면 아이폰5부터 쓰인 라이트닝 케이블 설명과 같다.

애플 팬 입장에서는 이번 USB-C가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해 보이지만, 사실 USB-C는 USB 3.0 프로모터 그룹 표준 기술이다. 반면 라이트닝은 애플이, 썬더볼트는 인텔이 개발한 기술이다.

USB-C를 왜 도입했을까

USB-C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장비들의 지원을 전제로, USB 3.1의 규약상 대역폭이 10Gbps니 빠른 데이터 전송은 기본이고 디스플레이포트(DisplayPort) 1.2 규약을 지원하니 고해상도 모니터 연결도 한 가지 포트와 케이블로 가능하다. (단, 애플이 이번에 발표한 맥북의 USB-C 포트는 USB 3.1의 1세대로, 최대 5Gbps를 지원함. 2세대는 10Gbps 지원. – 2015-03-13 11:00 덧붙임) 규약상 전력 전송을 100W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향후에 아이폰부터 맥북 프로와 맥 미니까지도 적용할 수 있고 거의 그렇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어댑터와 케이블을 하나씩만 들고 다녀도 될 것이다.

애플은 새로운 기술을 많이 만들고, 도입하고, 시도하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물론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이 실패했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애플이나 애플 제품을 지원하려는 일부 제조사들 외에는 널리 쓰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맥북이 USB-C만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과감한 신기술 도입

사실 애플이 맥 라인업에서 무언가를 과감하게 빼버린 게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맥북 에어를 선보이며 광학디스크드라이브(ODD)와 유선 랜 포트를 제외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 그 결정이 미친 것처럼 보였던 만큼이나 단 하나의 USB-C 포트를 가진 맥북도 그래 보인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이 결정이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에 대해 사망 선고로 여겨졌다. 맥북에어 때는 ODD와 유선 랜에 대한 사망 선고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이런 어댑터를 사서 들고 다녀야 하는 단점도 존재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이런 어댑터를 사서 들고 다녀야 하는 단점도 존재한다.

애플은 (어차피 아무도 안 따라가는)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을 따르라고 하는 대신 기존 USB의 새 버전으로 결국은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은 USB-C를 남들보다 빠르게 채택했다. 이 선택으로 애플은 USB-C라는 기술을 상용화해서 세상에 선보였다. (실제로 현재 이 기술을 제품에 적용한 업체는 애플이 처음이다.) 이제 썬더볼트와 라이트닝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애플은 이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자기가 만든 길로 오게 하는 대신 만들어진 혹은 터만 닦인 길을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을 선택한 듯하다. 이 점이 내게는 놀라운 변화였다.


slownews-logo1.png* 이 글은 “Fast is good, slow is better”, 슬로우뉴스에도 게재하였습니다 *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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