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 2: 나는 고객 감동이 싫어요 – 호텔 퀸시 & 포스코 왕상무

 


호텔 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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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객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로비로 내려와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컨시어지 데스크를 발견하고는 뭔가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계속해서 망설이는 표정을 보이다 겨우 말을 꺼낸다. “저… 저희 부부가 신혼 때 이 지역에 와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가게 이름도 위치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요. 찾을 수 있을까요?”

호텔 컨시어지는 말하자면 호텔 투숙객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풀어주는 만능 해결사 역할이다. 보통은 관광 안내, 교통편 수배, 공연장이나 레스토랑 예약 등등을 한다고 한다.

해당 작품에 꼭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호텔 퀸시”(글 이시제키 히데유키, 그림 토에이 미치히코, 학산문화사)에는 보통 이런 상황이 나온다. 사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요구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1류 호텔의 컨시어지 부서에 입사한 가와구치 료코와 그의 멘토이자 뉴욕에서 유명한 컨시어지였던 모가미 하이는 이런 고객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성장하고 보람을 챙긴다. (사실 그다지 보람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설정은 주로 요리 만화에 많다. 미숙하지만 열정적인 주인공과 그를 이끄는 스승. 추억의 맛을 찾는 손님과 그 맛을 재현하여 손님을 만족하게 하는 주인공, 그리고 해피 엔딩. 요리 만화에서는 그냥 보아넘겼던 이런 설정들이 “호텔 퀸시”에서는 영 불편하다. 아마도 요리 만화 속 손님이 ‘요리’라는 한정된 결과물을 추구하는 데 반해 호텔이라는 공간의 투숙객이 원하는 결과물은 그 폭이 거의 무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코 왕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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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라면을 다시 끓여달라고 수차례 요구하다 결국 승무원을 때렸다는 포스코 왕상무의 얘기를 들었을 때 “호텔 퀸시”가 다시 떠올랐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장 주된 목적(이 경우 ‘도착지에서 목적지까지의 이동’) 외에도 원하는 서비스의 폭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 어느 순간 이런 믿음이 너무 널리 퍼져 있다. 고객은 왕이고, 고객은 ‘감동’시켜야 한다는.

몇 년 전에 산 물건을 환불해달라는 정 여사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를 악용해 새 음식에 공짜로 먹기까지 하는 손님들, 외국 여행만 갔다 하면 신혼부부로 변신하는 관광객들, 매일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속이 문드러지는 상담원들의 사례는 이런 고객 감동의 시대가 만든 우울한 풍경이다.

물론 고객이 낸 대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을 테고, 모든 고객이 과도한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고객으로서 받아야 할 ‘무언가’에 대한 기대치가 과하게 높아 보인다. 그러니 진상 행동을 취하지는 않더라도 높은 기대치 때문에 생기는 불만을 속으로 삭이는 이들도 많지 않나 싶다.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며 ‘만족’하는 것이 최대한의 요구치고 ‘감동’은 옵션일 뿐인다. 그런데 현실은 만족을 넘어 감동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취급한다. 그러니 온 사회가 진상의 파도, 진상의 무한 도돌이표다. 누군가 진상을 부리고 당한 사람은 또 누군가에게 진상을 부리고 당한 사람은 또… 업체들과 일부 손님들이 만들어 놓은 이 과도한 고객 감동의 사회에는 호텔 퀸시의 주인공을 몇 트럭 쏟아부어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고객 감동이 싫다. 사랑한다는 멘트도 싫고, ‘고객님’이라는 호칭도 싫다. 감동 안 줘도 되니까 필요한 것만 해결해 줬으면 좋겠고, 굳이 사랑까지 받고 싶진 않으며 누구누구 씨, 누구누구 님 정도로만 불러주면 좋겠다.

뗏목지기

만화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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